“전화상담원 24시간 대기… 학위 검증 걱정말라”

  • 입력 2007년 8월 22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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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 중령 시절 대령 진급을 위해선 석사학위가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라살레대(LaSalle University)란 곳에 물어보니 인생 경험과 군 경력을 인정해 줄 수 있다고 하더군요. 5000달러를 내니 학위가 나왔습니다. 수업이나 시험은 전혀 없었습니다. 당시 대학 측은 정식 학위 인정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고 그렇게 믿었습니다.” 미국 에너지부 산하 국가핵안보국(NNSA)의 한 전직 고위 간부가 미 회계감사원(GAO) 조사관에게 털어놓은 학위 취득 경위다. 미국에서도 ‘학위 공장(diploma mill)’은 고질적인 문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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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생겨 폐쇄되면 간판만 바꿔 다시 문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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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이전엔 법에 따라 연방교육부가 직접 학위인증 기관을 공지했으나 대학 설립 자유화 이후 느슨해졌다. 현재 고등교육인증협의회(CHEA)와 연방교육부가 인정하는 96개의 인증기관 외에도 무자격 대학을 정식 학위를 수여할 수 있는 대학처럼 인정해 주는 ‘학위인증 공장(accreditation mills)’까지 난립해 있다. 게다가 주 정부마다 대응 기준이 달라 혼란을 부채질하고 있다.

수시로 대책이 나오지만 날로 교묘한 수법을 동원해 고객의 ‘학력 업그레이드’ 갈증을 건드리는 업자들을 따라가기 힘든 실정이다.

○…한국 사회에서 ‘가짜 학위’ 파문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이름이 퍼시픽웨스턴대(Pacific Western University)와 퍼시픽예일대(Pacific Yale University)다. 한국 교육부 산하 학술진흥재단은 2005년 이들 대학의 학위 인정을 거부하겠다고 국회에 보고한 바 있다.

한국의 인명 검색 사이트에서 졸업생 검색을 치면 수십 명의 유명 인사가 뜨는 퍼시픽웨스턴대는 2004년 미국 GAO의 ‘학위 공장’ 조사 때도 집중 거론됐다.

당시 이 대학을 비롯해 3개 비인가 대학에서 학위를 취득한 연방공무원이 463명에 이르며 이 중 최소한 64명이 정부의 학비 지원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GAO는 당시 “퍼시픽웨스턴대는 학점이나 코스별로 학비를 책정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학위 비용을 받는데 학사학위는 2295달러, 경영학 석사학위는 2395달러, 박사학위는 2595달러”라고 밝혔다.

이 대학은 1977년 설립됐는데 로스앤젤레스 근교 브렌트우드가 주소지였다. 하와이에도 같은 이름의 대학이 있었고 웹사이트도 공유했으나 현재는 무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와이의 대학은 주 정부로부터 사기죄로 고소당해 지난해 문을 닫았다. 브렌트우드의 대학은 지난해 샌디에이고로 주소지를 옮기고 이름도 ‘캘리포니아 미라마대(California Miramar University)’로 바꿨다.

이 대학은 캘리포니아 주 정부의 인가를 받았다고 밝히고 있으나 고등교육인증협의회가 인정하는 어떤 학위인증기관에도 등록되지 않았다. 본보가 검색해 본 결과 퍼트리샤 워커 국방부 부차관보도 이 대학에서 학사학위를 받았다. 워커 차관보의 홈페이지엔 출신 대학은 언급하지 않고 아메리칸대에서 석사를 받았다고만 돼 있다.

하지만 이들을 포함해 비인가 대학이라 해서 무조건 ‘학위 공장’으로 단정하는 건 곤란하다는 의견도 많다.

○…‘학위 공장’들은 등록생이 소속 기업에서 학비를 지원받거나 학위 검증을 받을 경우에 대비해 갖가지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로치빌대 입학 상담관은 본보 기자가 ‘회사에서 학위의 진위를 확인하려 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묻자 “실제 일부 미국 회사들은 졸업증명서를 떼어 오라고 하는데 그것도 제공하며 (문의전화가 올 경우에 대비해) 24시간 전화상담원이 있다.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졸업생 중에 한국 사람도 있느냐’는 질문에 “물론이다. 지금까지 전 세계 8만 명 이상에게 학위를 제공했다. 우리는 ‘온라인대학연합회’와 ‘온라인교육인증협의회’ 등 두 군데에서 정식 인증을 받은 대학”이라고 주장했다.

퍼시픽웨스턴대도 지원자를 가장한 GAO 조사관에게 “정부 학비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수강 코스별로 전체 학비를 나누는 방법으로 서류를 떼어 주겠다”고 말했다.

○…캘리포니아 한인 밀집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광고하는 대학들은 대개 세 가지로 분류된다. △유학생을 위한 비자(I-20) 서류를 발급해 주는 어학원 형식의 학교 △한의학, 신학 등 특정 전공을 중심으로 한 학교 △유명 대학과 흡사한 이름으로 ‘미국 대학 졸업장’을 파는 학위 공장 등이다.

이름뿐만 아니라 홈페이지도 유명 대학의 것을 본떠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다. 대학 로고의 디자인과 글자체도 아이비리그 대학과 흡사한 경우가 많다. 상술도 탁월해 피라미드 방식으로 학생이 새 고객을 데려오면 학위 발급 비용을 깎아 주기도 한다.

로스앤젤레스 총영사관의 김상재 교학실장은 “서울에서 이러이러한 대학 졸업자가 있는데 제대로 된 학교인지 확인해 달라는 문의가 많이 온다”며 “아예 무인가인 곳 외에 주 정부의 설립 허가는 받았지만 정식 학력 인증을 못 받은 학교도 있으므로 면밀한 확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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