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임규진]누구를 위해 경보음을 울리나

  • 입력 2007년 8월 22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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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와 경제 분야에서 ‘조기경보(早期警報)’를 소홀히 하면 대란(大亂)을 겪게 된다.

1950년 6·25전쟁 때의 일이다. 국방장관이던 신성모 씨는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라고 허풍을 떨었다. 남침 직전까지 조기경보음은 울리지 않았다. 북한군은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했다. 1997년 외환위기 때도 비슷했다. 경보음은 제대로 울리지 않았고 하루아침에 수백조 원의 국부(國富)가 날아갔다.

이런 실패를 교훈삼아 정부는 나름대로 안보와 경제에서 조기경보시스템(AWACS) 구축에 노력해 왔다. 공군이 도입할 예정인 미국 보잉사의 조기경보기는 360km 이내에 있는 공중의 전투기나 헬기, 미사일을 알아낼 정도라고 한다. 안보 분야에서 6·25전쟁의 실수는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다.

외환위기 참사를 겪은 뒤 정부는 경제 분야에서도 AWACS 구축에 노력해 왔다. 대표적인 기관은 1999년에 설립된 국제금융센터다. 이 센터의 정부균 소장은 “정부와 주요 금융회사에 수시로 경보음을 울리고 있다”며 “모든 사람이 좋다고 얘기할 때에도 우리는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고 말했다. 많은 국책 및 민간 연구소도 나름대로 조기경보기 역할을 하고 있다.

문제는 경제 경보가 안보 경보보다 훨씬 더 어렵다는 데 있다. 보잉사의 조기경보기는 공간적으로 멀리 보는 역량에 의존하지만 경제 경보기는 시간적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첨단 수학과 통계학을 동원한 파생금융상품이 늘면서 경제의 미래는 불확실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에서 보듯 선진국 금융당국조차 사태를 예견하지 못했다. 대표적 경제 조기경보기라 할 수 있는 무디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피치 등 세계 3대 신용평가회사는 채권발행업체들과 유착해서 조기경보음을 울리지 않았다는 혐의까지 받고 있다.

그러나 경제 조기경보의 어려움을 감안하더라도 이번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서 보여 준 정책 당국의 모습은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이달 중순까지 주식시장 시가총액이 100조 원 이상 증발했지만 별다른 대응책은 나오지 않았다. 한국은행의 금리정책 역시 하루 앞을 내다보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재할인율 인하라는 카드를 내놓으며 효과적이고 적극적인 대응에 나선 미국 정책 당국과 대비될 수밖에 없다.

정책 당국은 언제든지 금융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갖고 경제 경보음에 맞춰 신속한 대응에 나서야 한다. 1997년 동남아에서 촉발된 외환위기가 그렇게 빨리 한국경제를 덮치리라고 예상한 전문가들은 없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경제 경보기들은 대외적으로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의 국내 유입 정도와 이탈 가능성, 국제적 고금리 기조로의 전환과 자산가격의 붕괴 가능성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 대내적으론 집값 하락에 따른 금융기관 부실화 가능성, 통화 당국의 정책 실수에 따른 시장 교란 가능성 등도 주시해야 한다.

대내외 부문에서 위기 징후가 조금이라도 감지되면 경제 경보기들은 국민경제를 위해 사전(事前)에 경보음을 울려야 한다. 위기가 발생한 뒤 뒷북치듯 울리는 경보음은 사태만 악화시킨다.

임규진 경제부 차장 mhjh2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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