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상사 시계 ‘3국 간 거래’에 맞춘다

  • 입력 2007년 8월 22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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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인터내셔널은 올해 초부터 러시아 광산에서 철광석을 사들여 한 달에 14만 t씩 중국 제철소에 팔고 있다. 해외에서 원자재를 구매해 제3국의 수요자에게 직접 판매하고 차액을 벌어들이는 ‘3국 간 거래’다.

러시아 광산 측이 생산량 변화가 심해 수요자와 대규모 공급 계약을 직접 체결하기 어렵다는 점을 이용해 대우인터내셔널이 중간자로 나서 3자 모두가 이익을 얻는 거래를 성사시켰다. 한국 종합상사의 무역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국내 상품을 수출하거나 외국 상품을 수입하는 수출입 중심 무역에서 벗어나 해외 현지에서 상품과 원자재 등을 사고파는 ‘3국 간 무역’이 급증하고 있다.

○ 종합상사 무역 패러다임의 변화

21일 대우인터내셔널에 따르면 이 회사의 올해 상반기(1∼6월) ‘3국 간 거래’ 매출은 1조6773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4.9% 증가했다.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같은 기간 37.6%에서 43.2%로 높아졌다.

반면 주력 사업인 국내 상품을 해외에 내다 판 수출실적은 2조646억 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14.8% 늘어나는 데 그쳤다.

SK네트웍스도 올 상반기 실적 집계 결과 ‘이변’이 일어났다. 3국 간 거래 매출이 8381억 원으로 무역부문 매출의 50.4%를 차지해 처음으로 해외수출 실적(6693억 원)을 뛰어넘었다. LG상사도 올 상반기 3국 간 거래 매출이 9884억 원으로 해외수출(9606억 원)을 추월했다.

SK네트웍스 측은 “중동의 ‘건설 붐’으로 중국, 인도네시아에서 건축자재를 사다가 중동에 판매하는 사업이 호조”라며 “3국 간 거래 전담팀도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올 상반기 3국 간 거래 비중은 무역부문 매출의 30%대”라며 “1990년대와 비교하면 2배 이상으로 성장한 수치”라고 말했다.

국내 상사들의 3국 간 거래 품목은 철광석, 철강, 곡물, 건자재부터 공산품까지 다양하다. LG상사는 러시아제 카모프 헬기의 동남아시아 판권을 확보해 현지 판매를 추진 중이다.

○ 수출 경쟁력 약화도 원인

최근 3국 간 거래 규모가 급성장한 것은 주요 거래 품목인 원자재 가격이 급등한 데다 중동 등 신흥시장의 상품과 원자재 수요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국내 상사의 리스크 관리 능력이 높아진 것도 거래 비중이 높아지는 이유다. 상사가 3국 간 거래를 성사시키려면 상품의 품질, 선적, 결제 등을 책임져야 한다. 해외 영업망이 많고 리스크 관리 능력이 뛰어난 일본 종합상사의 경우 3국 간 거래가 수출과 비슷한 규모다.

3국 간 거래가 늘어난 것은 국내 제조업의 해외 이전과 원화 강세, 임금 인상 등에 따른 수출 경쟁력 약화 등 국내 산업구조의 변화가 근본 원인이라는 지적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A종합상사 관계자는 “중저가 상품의 경우 우리가 해외에서 구입해 판매한 상품과 국내 기업이 수출한 제품이 제3국 시장에서 경쟁하는 일이 종종 있다”고 말했다.

신승권 국제무역연구원 연구위원은 “3국 간 거래는 국내 산업구조의 변화에 따라 나타나는 일종의 ‘글로벌 아웃소싱’으로 볼 수 있다”며 “해외영업망을 강화하고 리스크 관리 역량을 키울 경우 종합상사의 주요 수익모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용 기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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