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는 처마끝에 맺히고 풍류는 툇마루에 앉더라

  • 입력 2007년 8월 21일 20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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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가회동 북촌마을의 오래된 한옥 '무무헌'(無無軒). 없다는 마음까지도 사라지는 경지에 다다를 정도로 고즈넉한 한옥이다.

비가 쏟아지던 한 여름의 어느 날. '무무헌'에선 김영길의 아쟁산조 공연이 열렸다. 대청마루에서 활을 긋는 연주자의 양 옆으로 안방과 건넌방까지 관객들이 삼삼오오 둘러앉았고, 툇마루에서 앉아 편안히 감상하는 관객도 있었다.

구성진 아쟁산조가 연주되는 동안 기와지붕에서 마당으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는 오히려 촉촉한 배경음악이 됐다. 가끔씩 들려오는 천둥소리는 소리구멍을 채우는 자연의 추임새였다. 빗소리가 거세질수록 사람들은 더욱 더 음악에 빠져들었다.

국악의 참 맛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북촌한옥을 찾고 있다. 국악전문 음반사 '악당(樂黨)이반'의 소리재, 한상수자수박물관, 출판사 '김영사'의 후원(後園), 은덕문화원, 아름지기 안국동 한옥, 쇳대박물관, 락고재(樂古齋) 등의 한옥에서 한달에 한 두 번씩 국악공연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사단법인 '아름지기'가 펼치는 '가락(家樂)-한옥에서 산조듣기'와 음악동인 '고물'이 펼치는 '풍류-서울사투리' 공연이 그들이다.

○ 자연 속에서 즐기는 음악

"'풍류'(風流)라는 것은 말 그대로 바람 불고, 물 흐르는 곳에서 즐기던 음악이예요. 자연 속 한옥 같은 열린 공간에서 즐기던 음악이지요."(국악인 김희영)

국악은 원래 한옥의 사랑방에서 연주되던 음악이다. 그래서 음량이 크지 않다. 서울 서초동 국립국악원 예악당이나 우면당 등 서양식 음악홀 처럼 지어진 극장에서는 제 맛을 즐기기 어렵다. 또 서양악기와 퓨전을 할 경우 국악기에 마이크를 달아 증폭하는 과정에서 소리가 왜곡된다. 국악에 별다른 감흥을 못 느끼던 사람도 한옥에서 가야금이나 아쟁산조를 듣노라면 넋을 잃고 빠져든다.

"국악기는 원래 한옥을 채우기 위한 악기입니다. 센 음들은 창호지를 통해 빠져나가고, 부드러운 음은 서까래에서 맴돌지요. 서양음악은 밀폐된 공간에서 절대음이 깨끗하게 연주되는 것을 중요시하지만, 국악은 빗소리 바람소리까지 다 음악으로 받아들입니다."

'소리재'의 주인인 김영일 악당이반 대표는 "한옥은 자체가 완성된 국악 공연장"이라며 "무대를 인위적으로 만들기보다 직접 한옥으로 찾아가야 할 때"라고 말했다.

○북촌 한옥을 음악으로 채우자

1934년 설립된 역사와 문학을 연구하던 '진단학회'의 건물이었던 '락고재(樂古齋)'는 전통차와 음악을 즐길 수 있는 한옥이다. 연못과 정자가 있는 이 한옥에는 전통 차와 음악을 여유롭게 즐겨보려는 외국인들도 심심찮게 찾아온다.

집주인 안영환 씨는 "북촌 한옥을 단순히 보존하고 가꾸기 보다는 그 안에 담긴 문화적 가치를 일깨워야 할 때"라며 "가장 좋은 것은 한옥에 늘 우리 음악이 흐르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국악과 출신 연주자들로 구성된 음악동인 '고물'은 25일 오후 5시 소리재에서 거문고, 가야금, 대금, 피리 등으로 이뤄진 '줄풍류' 공연을 펼친다. 다음달 15일 '무무헌'에서는 가야금의 명인 황병기 씨가 제자 박현숙의 가야금연주에 장구로 반주를 하는 특별한 음악회가 열릴 예정이다. 한옥의 공간적 특성상 관객은 20~30명 정도로 제한된다.

'고물'의 피리 연주자 유현수 씨는 "국악 그대로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소규모의 연주회를 자주 열겠다"고 말했다.

* 이 기사 취재에는 본보 대학생 인턴기자 이재하(23·서울대 언론정보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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