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승복’… 경선 축제의 또다른 주인공

  • 입력 2007년 8월 21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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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 머금고…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이명박 전 서울시장에게 석패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20일 지지자들의 환호를 받으며 전당대회장인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을 나서고 있다. 신원건 기자
미소 머금고…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이명박 전 서울시장에게 석패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20일 지지자들의 환호를 받으며 전당대회장인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을 나서고 있다. 신원건 기자
20일 한나라당 전당대회가 열린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불과 1.5%포인트(2452표) 차로 박근혜 전 대표를 누르고 대선 후보로 선출되는 순간 박 전 대표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 후보가 크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을 때도 미소를 잃지 않고 그의 손을 꼭 잡았다. 이 후보는 박 전 대표에게 “정말 고맙다”고 거듭 말했다.

공식 발표 전 김무성 캠프 조직총괄본부장은 단상으로 올라가 박 전 대표에게 귀엣말을 했다. 근소한 표 차로 패배했다는 소식이었다. 김 본부장의 눈은 젖어 있었다. 하지만 박 전 대표의 표정은 담담했다.

이어진 패배 후보 연설에서 박 전 대표는 감정의 흐트러짐 없이 이 후보에게 축하인사를 건넸다. 그러면서 그는 “경선 패배를 인정한다.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한다. 오늘부터 당원의 본분으로 돌아가 정권교체를 이루기 위해 백의종군 하겠다”고 밝혔다. 단 밑에 있던 10여 명의 참모들은 일제히 울음을 터뜨렸다. 관중석에 있던 수천 명의 박 전 대표 지지자 중 상당수도 연방 눈물을 흘리며 박수를 보냈다.

단상에 있던 강재섭 대표도 손수건을 꺼내 눈가를 훔쳤다. 이전까지 ‘경선 무효’를 외치던 박 전 대표 지지자들도 그의 승복 선언 직후 구호를 멈췄다.

박 전 대표의 ‘아름다운 패배’가 이날 전당대회를 진정한 축제의 장으로 만든 것이다.

▽“박근혜, 대인 풍모 보여줬다”=박 전 대표는 선거인단 투표에서 이 전 시장을 이기고도 여론조사에서 2884표를 져 아쉽게 패배했다. 그만큼 경선 결과에 승복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박 전 대표는 패배 후보 연설에서 “경선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을 잊자. 하루아침에 잊을 수 없다면 며칠이 걸려서라도 잊자. 그리고 다시 열정으로 채워진 마음으로 돌아와 나를 도와줬던 그 순수한 마음으로 정권 창출을 위해 함께 힘을 모으자”고 호소했다. 사실상 이 후보 ‘지지 선언’을 한 것이다.

뒤 이은 연설에서 원희룡 의원은 “박 전 대표의 연설을 들으며 코끝이 찡해졌다. 패배를 아름답게 맞는 것도 어려운 것이다”라며 “그의 대인 같은 모습에 진심으로 존경과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한 당직자는 “절반의 지지율로 시작해 이 전 시장과 박빙의 승부를 벌일 수 있었던 것은 ‘박근혜’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며 “여성 대통령으로서의 가능성도 충분히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박근혜의 진로는=이 후보는 후보 수락 연설에서 “박 전 대표가 나와 함께 정권을 되찾아 오는 중심적 역할을 해줄 것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금주 중 박 전 대표를 따로 만나 위로의 말을 전하고 힘을 모아 달라고 요청할 예정이다.

승자와 패자가 모두 “하나가 되겠다”고 밝힌 만큼 올해 대선에서 당이 분열될 가능성은 많지 않아 보인다.

현 공직선거법은 정당 경선에서 패배한 후보의 해당 선거 출마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박 전 대표가 탈당 후 독자 출마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원칙과 약속을 중시하는 그의 성품을 감안하면 당 밖에서 다시 지지세를 규합할 가능성도 없어 보인다. 현재로서는 당에 남아 9월 하순에 구성될 선대위에서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

▽화학적 결합 가능할까=당의 절반에 가까운 박 전 대표 지지 세력이 이 후보를 지지할 것인지는 올해 대선의 결정적 변수다. 박 전 대표는 이번 경선에서 서울 경기와 호남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 이 전 시장에 앞서 전국에 걸친 두꺼운 지지 기반을 확인했다.

양측은 7개월 넘게 검증 공방을 벌이면서 감정의 골이 깊어져 있다. 자칫 박 전 대표가 뒷짐만 지고 있을 경우 대선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양측 간의 ‘진정한 화학적 결합’이 가능할 것인지가 최대 관심사다.

현재까지는 낙관론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검증 공방의 주역이었던 이 후보의 최측근 정두언 의원은 통화에서 “21일 (박 전 대표의 최측근인) 유승민 의원을 만나 양 캠프 간 협력방안에 대해 모든 것을 열어 놓고 논의할 것”이라며 “전당대회 주인공은 이 후보가 아니라 박 전 대표였다”고 말했다.

나경원 대변인은 “치열한 감정싸움을 했던 양 캠프가 하나로 거듭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은 박 전 대표의 감동적인 연설의 힘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한나라당 경선 승복한 박근혜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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