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정희]열린우리당 폐업, 반성 한마디 없나

  • 입력 2007년 8월 21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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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운 소식뿐이다. 장마와 게릴라성 호우에 이어 찜통더위로 잠 못 이루는 열대야가 계속되는 가운데, 전해 오는 소식마다 우울하기만 하다. 아프가니스탄에 억류된 인질들, 홍수로 큰 피해를 보았다는 북녘 동포들, 가짜 학위와 과대 포장 학력을 양산해 온 한국 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에 가슴이 답답하다. 정치권으로 눈을 돌리면 더 짜증이 난다. 네거티브 폭로전으로 점철된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은 물론,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범여권 철새 정치인들도 꼴불견이다. 그 가운데 별로 시선도 끌지 못한 채 문을 닫아버리게 된 열린우리당의 운명은 씁쓸한 느낌을 준다.

‘100년 정당’ 큰소리 어디 가고

대다수 국회의원이 몇 차례에 걸쳐 탈당한 상황에서 당을 꾸려 나갈 동력을 잃었기 때문에 당의 와해는 충분히 예상됐다. 하지만 막상 16명 지도부만이 마지막 확대회의를 마치고 초라한 기념사진을 남기는 모습은 참담했다. 우리나라 정당사(政黨史)의 슬픈 장면이다. 전국정당화와 정치개혁을 내세우며 ‘100년 정당’을 표방했던 정당이 어찌하여 3년 9개월의 단명으로 간판을 내리게 됐는지, 이렇다 할 평가나 토론도 없이 슬그머니 사라지는 모습이 처량하기 그지없다.

열린우리당은 창당 때부터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었기에 그 정도 버틴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평가할 수도 있다. 한국 정당사를 돌이켜 보면 권력자가 정권을 쟁취한 이후 만든 정당이 오래간 적이 없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자유당, 박정희 전 대통령의 민주공화당, 전두환 전 대통령이 주도한 민정당의 운명이 그 증거다. 정치권력과 지도자는 정당을 기반으로 창출될 때 오래 지속되는 법이지, 거꾸로 정치권력과 특정 지도자를 중심으로 성립된 정당은 단명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열린우리당이 안고 있던 한계를 차치하고라도 지난 3년 9개월의 자취를 반성하려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책임을 지겠다고 나서는 정치지도자를 보기 어렵다. 민주당으로부터의 탈당을 주도했던 노무현 대통령과 그의 추종자들, 그리고 10명에 이르는 역대 당 의장은 요즘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다.

실패에 대한 반성과 참회 없이 민주신당과의 어정쩡한 합당으로 유권자의 시선을 피할 수 있겠는가. 새롭게 꾸리려는 정당의 의원들이 열린우리당 출신 의원들인 것이 자명한 만큼 열린우리당 실패의 원인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비록 열린우리당은 실패했지만 추구했던 목표 중에 아직도 유효한 것이 있는지, 정책 노선 중 버릴 것과 챙길 것은 무엇인지, 방법론에 문제가 있었으면 어떤 개선이 있어야 하는지 등을 오늘부터라도 점검해야 한다. 열린우리당이 추구했던 목표 중 시간을 두고 지속해야 할 정치 실험은 무엇인지도 살펴봐야 한다. 당정(黨政) 분리나 기간당원제, 그리고 원내 중심의 국회운영 등은 비록 성공적이진 않았지만 정착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

간판만 바꾸는 건 국민 우롱

원인 분석과 대안 제시도 없이 정당의 간판만 바꾸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다. 정강과 정책노선의 줄거리도 없이 소위 범여권의 잠재적 대통령 후보군 중심의 급조한 정당으로 유권자의 지지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열린우리당의 실패가 좀 더 나은 정당정치를 위한 시금석이 돼야 한다. 실패가 파행으로, 파행이 또 다른 실패로 이어지지 않도록 열린우리당에 몸담았던 정파와 정치인은 깊은 반성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민심이 어디에 있는지, 왜 아직도 정치를 하고 있는지, 새로운 정당이 지향하는 것은 무엇인지 자문해 볼 시간이다. 잠 못 이루는 열대야를 이용해 봄 직하다.

이정희 한국외국어대 교수 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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