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포커스/안순권]‘차이나 프리’ 강건너 불 아니다

  • 입력 2007년 8월 21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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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독성 물질이 든 생활용품과 음식료품, 불량 타이어, 장난감, 양식 수산물 등 중국산 수출품의 위험성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이 같은 중국산(産) 위험 경계령이 유럽, 일본, 동남아시아로 확산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안전 확인 인증을 받지 않은 중국산 장난감이 버젓이 유통되고 있어 소비자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미국은 ‘제조과정에서 위험한 중국산 제품을 쓰지 않았다’는 ‘차이나 프리(China free)’ 등록상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파죽지세의 중국 경제가 세계시장에서 강력한 견제를 받게 된 것은 경쟁 관계에 있는 한국으로선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오래전부터 중국산 불량 식료품과 한약재, ‘짝퉁’ 공산품의 폐해로 애를 먹은 처지라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의 심정일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사태의 파장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중국산 제품의 안전성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 간 마찰의 불똥이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으로 튈 수 있기 때문이다. ‘메이드 인 차이나’의 이미지가 크게 손상됨으로써 중국의 수출이 차질을 빚을 경우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도 곤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중국 진출 한국 기업은 주요 부품과 설비를 주로 한국에서 수입해 가므로 한국의 수출도 연쇄 타격을 입는다. 미국, 유럽연합(EU), 일본의 중국 때리기가 심화되면 장기적인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 중국에 진출한 기업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시급히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중국 정부는 제품 안전 감시를 대폭 강화할 태세다. 외국 기업에 대한 세제 혜택 축소, 환경 규제 강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한국 기업의 경영 부담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차제에 소비자 안전을 우선시하는 경영 체제를 정비하는 게 낫다. 자존심이 크게 상한 중국 정부가 불량제품 단속을 벼르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 바이어가 요구하는 낮은 가격을 맞추기 위해 소비자의 안전을 고려하지 않은 부품과 원자재를 사용하는 수출 주문을 접수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안전 신뢰도에 금이 간 중국산 제품과의 품질 차별화 전략을 추진할 기회로 삼을 필요도 있다. 농산물 및 제품 안전에 대해 최근 관심이 부쩍 커진 중국인의 욕구를 충족할 제품을 공급하면 기업 이미지 개선으로 기업의 장기적인 이익을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중국에서는 안전성이 강화된 한국산 가전제품과 비싸지만 믿고 먹을 수 있는 한국산 식료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이 같은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는 적극적인 영업 전략을 짜야 한다.

글로벌 경쟁 시대에서 제품의 안전기준 강화는 세계적 추세다. 이는 기업 환경이 공급자 중심에서 소비자 중심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매장에서 판매한 운동 기구를 이용하다 소비자가 다친 데 대해 적절한 보고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유통업체에 거액의 벌금을 물게 한 곳이 미국이다. 벌금을 낸 월마트가 그 제품을 만든 회사와 거래를 중지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했을 것은 뻔하다. 미국과 EU는 언제나 제품의 안전 문제를 통상압력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한국은 미국, EU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잇달아 맺어 큰 이익을 취하려는 단꿈에 젖어 있다. 그러나 이번에 불거진 중국 제품의 안전성 문제는 이들 나라의 까다로운 소비자들에게 조금이라도 신뢰를 잃을 꼬투리를 잡히면 낭패를 볼 수 있다는 교훈을 던져 준다. 소비자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경영체제를 재확립하고 선진국 수준의 소비자 안전 시스템 구축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안순권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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