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논술하이킥]군포시 수리고의‘토론논술’ 동아리

  • 입력 2007년 8월 21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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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 말하고-영상물 보고-논제 정하고

‘진짜 논술’할 수 있을때까지 토론 또 토론

‘논술(論述)=어떤 것에 관하여 자신의 의견을 논리적으로 서술함.’

논술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그러나 학교나 학원에서 배우는 논술은 이와 다를 때가 많다. 어떤 사안에 대해 꼼꼼히 살펴보고 ‘나만의 의견’을 정리하기에 앞서 제시문을 분석하고 이를 글로 표현하는 법부터 가르친다. 이런 과정을 거쳐야 말 그대로 논술의 단계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경기 군포시 수리고등학교는 올해 3월 ‘수리고 토론논술’이라는 동아리를 만들었다. 이 동아리의 특징은 진짜 ‘논술’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토론’을 계속한다는 것. 토론을 통해 논술로 나아간다는 의미에서 ‘토론논술’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처음 토론을 하는 아이들은 언론매체에서 접한 의견을 마치 자기 의견인 것처럼 흥분해서 말하기 쉬워요. 아직 생각의 깊이가 얕고 삶의 경험이나 지식이 부족해서 그렇죠. 토론은 스스로 토론할 자료를 준비하고 친구들의 의견을 듣는 과정에서 ‘진짜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있게 해주는 것입니다.”(고은옥 국어 교사)

13일 이 학교 문예창작실. 개봉 14일 만에 관객 600만 명을 돌파한 화제의 영화 ‘디 워(D-War)’를 놓고 동아리 학생들이 토론을 벌였다.

“디 워는 열풍을 일으킬 만해. 우리나라의 이무기 전설을 소재로 해외 촬영을 했다고 해서 어색할 줄 알았는데, 실제로 보니까 캐릭터나 내용, 컴퓨터 그래픽(CG)이 잘 어우러졌더라고. 한국적 콘텐츠를 철저히 세계화한 멋진 사례라고 생각해.”(김생명)

“그래도 디 워 열풍에는 분명히 감독을 이용한 마케팅 측면이 커. 사실 이 영화를 보는 사람 대부분이 ‘영화’ 디 워를 보러 가는 게 아니라, ‘심형래가 만든 영화’를 보러 가는 걸 거야. 마지막에 아리랑이 나오면서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장면만 해도 그래. ‘이제 영화는 내 인생의 가장 큰 목표가 되었다. 세계에서 최고가 되고 싶다’는 심형래 감독의 글이 올라가는데, 그거야 말로 감독을 이용한 애국심 마케팅이라고 봐.”(이요한)

지금은 자신의 의견을 조리 있게 말하는 학생들이지만, 3월에만 해도 대답이 사뭇 달랐다.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했을 때 “좋아요”와 “나빠요”로만 대답을 했다는 것. 학생들이 다섯 달 만에 이렇게 바뀐 것은 꾸준한 토론의 결과다. 이 동아리는 학기 중에는 격주, 방학에는 매주 한 차례 모여 3시간씩 토론을 해 왔다.

고은옥 교사의 토론 수업은 언제나 ‘3분 말하기’로 시작된다. ‘3분 말하기’란 10명(1학년 8명, 2학년 2명)의 동아리 구성원이 각자 생각나는 단어를 쪽지에 적어 내고, 1명씩 차례로 쪽지를 뽑아 3분 동안 쪽지에 적힌 단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성적’ ‘꿈’ ‘시간’처럼 생활과 관련된 주제가 많이 등장한다.

다음으로 ‘FTA’나 ‘아프가니스탄 한국인 피랍 사건’ 같은 특정 주제를 정해 그 내용과 관련된 영화나 TV 시사토론 프로그램을 본다. 다른 견해의 신문 사설을 비교해 읽어 볼 때도 있다. EBS 프로그램인 ‘지식채널e’의 홈페이지는 고 교사가 즐겨 찾는 웹사이트. 시사·경제·교육·과학 등 분야별로 생각할 거리가 정리된 5분 분량의 영상물을 찾아 수업 도입부 자료로 활용하곤 한다.

준비한 시사 자료를 보고 나면 아이들이 투표를 해서 스스로 토론할 논제를 정한다. 글쓰기는 아직 개요를 짜 보거나 600자 정도의 짧은 글을 써 보는 정도. 방학 때부터는 1000자 이상의 긴 글도 이따금 써 보고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과제로 내줄 뿐 수업시간에는 철저히 토론에 집중하도록 한다.

이 동아리에 들면 매달 1만3000원의 참가비를 부담해야 한다. 토론할 때 발언의 기회를 골고루 주기 위해서 인원도 1, 2학년 총 10명으로 제한했다. 그래도 가입하려는 학생이 많아 시험까지 치렀다. 지금의 동아리 구성원은 집단토론을 통해 3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들어온 ‘소수 정예’ 멤버다. 수업에 대한 학생들의 만족도도 높다.

“고등학생은 학교 공부만으로 벅찬데, 이렇게 재미있게 시사를 배워서 좋아요.”(이예랑)

“토론을 충분히 하고 나서 쓰니까, 말한 것을 글로 옮겨 쓴다는 느낌이 들어서 옛날처럼 부담스럽지 않아요.”(정지원·16)

문예창작 특성화 학교인 수리고는 논리학(1학년)과 문장론(2학년)을 선택과목으로 정해 매달 한 차례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강사들의 첨삭을 받는 등 체계적인 논술 교육을 하고 있다. 토론논술 동아리는 1, 2학년을 대상으로 올해 처음 도입한 것. 보고(영화, TV), 듣고(친구들의 의견), 읽고(신문 사설, 책), 말하고(자신의 의견), 쓰는(논술문) 훈련을 통해 ‘진짜 논술’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이 동아리의 목표다.

최세미 기자 luckyse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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