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준칼럼]박근혜, 빛났다

  • 입력 2007년 8월 20일 20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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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웃었다. 평정(平靜)을 잃지 않았다. 늘 그랬듯이, 깨끗하게 인정한 패배의 변도 흐트러짐이 없고 명료했다.

박근혜 씨에게 진심으로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다. 그는 이달 들어 승기(勝機)를 잡는 듯도 했으나 작년 10월 이후의 열세를 끝내 뒤집지 못했다. 하지만 결코 무의미한 도전은 아니었다. 본인에게나 국민에게나 희망을 남겼다.

지금 이 나라는 국가지도자 인재 풀이 빈약하다. ‘노무현의 추억’ 때문인지, 국회의원에 출마하듯이 쉽게 ‘대권 도전’을 선언하는 스몰 포테이토가 줄을 잇지만 아무나 대통령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범여권(與圈)에는 DJ의 바짓가랑이를 놓고 홀로 서 보겠다는 인물을 발견하기 어렵다.

이런 풍경 속에서 박 씨는 한나라당 경선에서 석패하긴 했어도 ‘한국 정치의 자산(資産)’임을 공인받았다. 그는 경선 과정에서 ‘원칙적 보수주의자’의 면모를 더욱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한나라당의 이번 경선 실험은 박 씨와 관련해 중대한 정치사적 의미를 창출했다. 바로 ‘여성 대통령의 가능성’을 입증했다는 점이다. 그는 이명박 후보와의 박빙 승부를 통해 여성 대통령에 대한 ‘실감’을 불러일으켰다. 이처럼 국민 의식과 정치문화를 일거에 업그레이드한 에너지가 그에게서 나왔다.

아름다운 패배가 키운 가능성

박근혜와 같은 정치적 자산이 존재함으로 해서 정치의 예측 가능성이 커지고, 그것이 정치의 안정을 낳으며, 정치 안정이 국가 발전의 안전판이 되는 선(善)순환을 기대할 수 있다. 이만한 정치적 자산을 확인하게 됐다는 것은 국민에게 행운이기도 하다.

박 씨는 여론조사의 벽을 끝내 넘지 못했지만 당심(黨心)은 이명박 씨가 아니라 그의 편에 기울었다. 이런 선전(善戰)에는 ‘규모는 작지만 충성스러운’ 선거캠프가 한몫을 했다고 추측된다. 여론이 불리한데도 기꺼이 뛰어들어 그를 도운 동지(同志)가 많았다는 사실 자체가 ‘박근혜 리더십’의 또 다른 잠재력이다.

경선 기간, e메일 홍보전 등에서 박 캠프는 집요할 정도로 부지런했던 데 비해 이 캠프는 ‘후보 주변’에서만 요란했던 감이 있다. 이 후보 측은 ‘큰 캠프’와 구태의연한 세(勢)몰이에 매달린 ‘상상력 빈곤’이 당심 잡기에서 박 후보 측에 밀린 원인이었음을 깊이 새기고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건방을 떨면 선거는 망친다. 박 씨는 이처럼 승자 측이 자만에 빠지지 못하도록 하는 교훈도 주었다.

그렇다고 해서 승패가 바뀌지는 않는다. 어제 그는 경선의 기억, 패배의 아픔을 “잊어버리자”고 다짐했다. “며칠 몇 날이 걸려서라도…”라고 한 것은 잊기 어려울 것임을 예감하기 때문인 듯도 하다. 그러나 우선 전투 마인드에서 벗어나 평상심(平常心)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의 ‘강한 정신력’이라면 외환위기 앞에서 ‘구국의 단심(丹心)’으로 정치에 입문한 10년 전으로 돌아가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을 터이다. 당시 그는 “어떻게 일으켜 세운 나라인데…,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때 그 마음 하나면 그에게도, 국민에게도 미래가 있지 않겠는가.

주변에서 그냥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이 후보 측의 ‘공천 보복’을 두려워하는 ‘박근혜 사람들’이 딴살림을 차리자고 조를지 모른다. 경선 막바지부터 그런 조짐이 있었다. 박 씨를 기다리는 위험한 유혹이다.

역사에 가정(假定)은 없다지만, 1997년 대선 때 이인제 씨가 당시 신한국당을 탈당하지 않았다면 명실상부한 ‘차세대 리더’로 2002년엔 대통령이 됐을 거라고 얘기하는 사람이 많다.

새 역할로 자신과 국민에 희망을

우리 정치사에서 일찍이 박 씨만큼 ‘졌지만 확실한 대주주(大株主)’는 없었다. 이제 그는 새로운 역할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당과 지지자들이 그에게 걸었던 기대가 무엇인지를 성찰해 보면 답이 가까이 있을 법하다. 이번 경선까지의 정치 10년을 돌아보면서 ‘박근혜의 한계’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도 눈을 뜬다면 더 좋을 것이다. 원칙에는 힘이 있지만, 작은 원칙들에 너무 매달리면 ‘왜소한 리더십’으로 느끼는 국민이 늘어날 수 있다.

‘보수(保守)의 보수(補修)’를 바라는 많은 국민이 그를 기억하고, 그를 부를 날이 있지 않을까. 박 씨는 1952년생이다. 이명박 씨보다 열한 살이 젊다.

배인준 논설주간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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