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레더라흐 교수 “탈레반 움직일 핵심인물 찾는게 급선무”

  • 입력 2007년 8월 20일 03시 05분


코멘트
“이번 인질사태의 해결에는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눈앞에 던져진 협상 조건의 범위를 훨씬 뛰어넘는 폭넓은 옵션들을 찾아내고 실제로 탈레반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인물들을 찾는 게 관건이다.”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 발생 한 달을 맞아 본보는 국제 분쟁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미국 인디애나 주 노터데임대 크록국제평화연구소의 존 폴 레더라흐(사진) 교수를 최근 인터뷰했다. 레더라흐 교수는 1980년대 초 니카라과를 시작으로 소말리아, 북아일랜드, 콜롬비아, 바스크, 필리핀, 타지키스탄, 네팔 등 각종 분쟁의 중재를 맡았으며 관련 저서만 16권에 이른다.

―한국인들이 납치된 지 한 달이 됐지만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아프간 사회의 문화적·종교적 틀(framework)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관건이다. 탈레반에 압력을 넣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한국인들이 ‘손님’임을 강조해 탈레반도 그런 사회적 시각에 부담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아프간 문화에선 손님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을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도 이를 강조했다. 사태 초기엔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지만 무대 뒤에선 탈레반에 ‘강한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극단주의 세력인 탈레반이 문화적·종교적 압력에 큰 영향을 받을까.

“그렇다. 즉각적인 석방을 이뤄낼 수 있을 만큼은 아닐지라도 영향을 미친다. 아무리 극단적 집단일지라도 탈레반 역시 이슬람 세계관의 해석을 존재의 근거로 삼는 집단이다. 아프간 사회의 종교·문화적 가치 형성에 영향력이 큰 사람들에게 호소해 그들의 주도로 인질사태를 둘러싼 전반적 분위기의 틀을 이쪽에서 원하는 방향으로 재설정해야 한다.”

―12일 끝난 아프간, 파키스탄 부족원로 회의인 ‘평화 지르가’에선 인질사태에 대해 아무 언급이 없었는데….

“그들은 이런 사안에 대해 성명 발표나 공개 토론을 하지 않는다. 논의는 대부분 비공식적이고 은밀한 대화를 통해, 얽혀 있는 인맥을 통해 이뤄진다. 추정하건대 해결을 위해 어떤 옵션이 가능한지, 각각의 옵션이 받아들여질 가능성 및 열쇠를 쥔 인물과 어떤 종류의 대화가 가능한지 등을 모색하는 움직임이 있을 것이다.”

―여성 인질 2명을 석방한 탈레반의 의도는 무엇일까.

“아픈 사람, 특히 여자를 석방하면 우호적 신호로 해석되어 자신들의 주장에 관심을 더 끄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라크, 아프간, 이란 등에서 벌어진 과거 인질 사건들에 비춰 볼 때 불행히도 이런 규모의 인질 사태 해결은 매우 긴 시간을 요한다. 일단 납치를 하면 납치범 스스로도 이미 저질러진 일에서 빠져나오기가 어렵다. 매일 가슴 졸이는 가족들에겐 너무도 어려운 일이겠지만 상당 기간 위기가 지속될 수 있음을 인식하고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탈레반이 인질을 추가 살해할 가능성은….

“그럴 가능성이 완전히 제거된 것은 아니다.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이지만 추가 살해 없이 몇 차례 데드라인이 지났다는 사실은 그들이 인질 살해를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한 주된 수단으로 여기는 것을 재고하고 있으며 주저하고 있다는 신호로 보인다. 그럼에도 통제를 벗어난 순간적 돌발 사건에 의해 인질 살해가 벌어질 수 있다. 콜롬비아 무장반군에 5년간 잡혀 있던 정치인 인질 11명이 올 6월 갑자기 모두 살해된 일도 있었다.”

―한국 사회에선 미국이 적극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반미 감정과 겹쳐서 제기되고 있다.

“미국이 아프간 정부에 일정한 영향력을 갖고 있지만 아프간 사회를 아는 사람이면 그들의 행동은 나름의 존재 방식에 따라 진행된다고 말할 것이다. 해결의 열쇠가 워싱턴에, 또는 서울에, 또는 어디에 전적으로 있다고 말하는 건 아프간 내부 프로세스의 복잡성을 간과한 측면이 있다. 결국 해결의 돌파구는 우리가 완전히 이해하거나 알기 힘든 아프간의 독특한 부족 문화에서 나올 것으로 본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