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전문가 릴레이 인터뷰<8>고하리 스스무 교수

  • 입력 2007년 8월 20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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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담 늦춰진만큼 우방과 충분한 협의 필요”

‘버릴 수도, 밀고 나갈 수도 없는 딜레마.’

고하리 스스무(小針進) 일본 시즈오카(靜岡) 현립대 국제관계학부 교수는 19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남북 정상회담 소식의 뒤꼍에서 ‘납치 문제’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서 있는 일본의 처지를 이렇게 비유했다. 해결할 마땅한 출구도, 버리고 갈 명분도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는 또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주변국들과 좀 더 사전에 협의하고 조정하는 자세를 보여야 진정한 동북아시아의 긴장 완화를 도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마침 정상회담이 연기된 만큼 이런 노력을 할 여유가 생겼다는 점도 강조했다.

―당초 8월 말로 예정됐던 정상회담이 10월 초로 연기됐다.

“단순하게 해석해도 좋을 듯하다. 실제로 북한의 피해 상황을 보면 도저히 손님을 맞을 여건이 아니다. 일각에서는 12월 대통령선거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했느니, 좀 더 지원을 받기 위한 전략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지만 지나친 해석이라고 본다. 다만 북한이 짠 시나리오는 변경될 수 있다. 가령 예정대로 정상회담이 열렸다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핵 불능화 약속을 직접 노무현 대통령에게 안겨 주려 한 것 같지만 이는 어렵게 됐다.”

―이번 정상회담은 일본에 어떤 의미를 가질까.

“남북의 정상이 만난다는 것 자체는 환영할 일이다. 다만 일본은 미국과 마찬가지로 비핵화나 대북 경제 지원 등은 어디까지나 6자회담을 축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일본은 남북이 주변국을 배제하는 형태로 급속도로 접근하는 것에 대해서는 우려감을 갖고 있다.”

―납치 문제가 일본의 발목을 잡고 고립을 자초한다는 인상이다.

“일본의 딜레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은 ‘납치 버블(거품)’ 덕에 탄생했으니 납치 문제를 버릴 수가 없다. 국민 정서로도 무고한 민간인을 대상으로 저지른 국가 범죄에 정부가 아무런 대처를 않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다만 전술에서 큰 오류가 있었다. 핵 문제 해결 등 북한 문제는 몇 년은 소요될 지난한 과정이다. 납치 문제는 이 중 하나로 걸고 출구 단계에서 해결을 노렸어야 했는데 아베 정권은 입구 단계에 들어가는 조건으로 내걸었다.”

노대통령 민족 중시 성향… 주변국에 신경안 써

美-日 ‘남북 배타적 민족주의’ 가능성에 불안감

비핵화 - 경제지원 등 6자회담 축으로 이뤄져야

―정책 전환은 불가능한가.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이겼다면 정책 전환이 가능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처럼 몇 달 뒤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어렵다. 아베 총리의 후임자나 민주당이라 해도 갑자기 정책을 전환하기는 쉽지 않을 거다. 누군가가 정치적인 판단을 하지 않는 한 무리다.”

―정상회담 소식에 대한 일본 내 반응이 상당히 차갑다.

“무엇보다 노무현 정부에 대한 불신감 때문이다. 지금보다 한일 관계가 좋았던 2000년 첫 남북 정상회담 때는 일본 내에서도 환영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햇볕정책에 대한 기대도 높았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별로 주변에 신경을 쓰거나 우호국과 협의하는 자세를 보이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일본은 북한뿐 아니라 한국 정부도 뭘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있다. 이는 미국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9일 아소 다로(麻生太郞) 외상은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에게 전화로 ‘북한에 납치 문제 등 현안 해결에 정면으로 임하도록 설득해 달라’고 부탁했다.

“일본 정부가 진정으로 실현을 원한다면 아베 총리가 노 대통령에게 전화해야 한다. 2000년 6월 당시 모리 요시로(森喜朗) 총리는 김대중 대통령을 통해 북-일 관계 개선을 요구하는 메시지를 김 위원장에게 전달했다. 물론 그것이 뒷날 북-일 관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웃 나라란 이런 협조가 가능해야 한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일본인 납치 문제는커녕 자국의 납치 피해자나 국군포로 문제조차 정면으로 제기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정상회담이 동북아 긴장 완화에 미칠 영향은….

“기여하길 바라지만 주변국으로선 우려도 크다. 지금의 노대통령 언동을 보면 ‘자유민주주의’라는 체제보다 ‘민족’을 더 중요시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번 회담도 ‘우리 민족끼리’의 번영을 호소하며 밀고 나간다면 오히려 불안정 요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요즘 위정자의 발언에 따라 내셔널리즘이 고양되는 경향이 동아시아에 만연하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의 결과 한반도에서 ‘우리 민족’을 명분으로 한 ‘배타적 내셔널리즘’이 고양되고 이것이 주변국에 확산되지 않도록 위정자들은 스스로 유의해야 한다.”

● 고하리 스스무 교수

도쿄외국어대 조선어학과를 졸업한 뒤 서강대와 서울대에서 현대 한국사회를 공부한 신진 지한파(知韓派). 1995∼1997년 주한 일본대사관 정치부 전문조사관으로 일해 양국 정계와 관계, 학계에 인맥이 두껍다. 한국 사회와 동북아 지역이 전문 연구 분야. ‘한국 워칭’ ‘한국과 한국인’ 등 저서와 논문을 다수 발표했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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