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친북성향 장관 보고 안받겠다”

  • 입력 2007년 8월 18일 03시 01분


코멘트
향군회원들 “李통일 물러나라”재향군인회 서울시 지부 회원들이 17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이재정 통일부 장관의 ‘서해교전은 반성해 봐야 할 과제’ 발언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이 장관의 사퇴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홍진환 기자
향군회원들 “李통일 물러나라”
재향군인회 서울시 지부 회원들이 17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이재정 통일부 장관의 ‘서해교전은 반성해 봐야 할 과제’ 발언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이 장관의 사퇴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홍진환 기자
2002년 6월 발생한 서해교전에 대해 “방법론에서 반성해 봐야 할 과제”라고 말한 이재정 통일부 장관의 발언 파문이 커지고 있다.

이 장관은 17일 정례 브리핑에서 ‘오해’라며 유감의 뜻을 밝혔지만 한나라당과 서해교전 유족 및 군 관계자 등은 격앙된 반응을 보이며 이 장관의 사과와 거취 표명을 요구했다.

▽한나라당, 이 장관 보고 거부=한나라당은 이날 오전 10시 15분 국회에서 받을 예정이던 이 장관의 제2차 남북 정상회담 관련 보고를 거부했다.

김형오 원내대표는 이날 주요당직자 회의에서 “서해교전은 북한이 북방한계선(NLL)을 무단 침범해 기습공격을 벌여 국가 안보에 중대한 문제를 던진 사건”이라며 “이 장관을 만나 정상회담 관련 보고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취소했다”고 말했다. 김 원내대표는 “이 장관은 인사청문회 때부터 친북 성향을 보여 왔고, 국무위원으로서 갖춰야 할 국가관이 미달돼 통일부 장관을 맡아서는 안 될 사람”이라고 덧붙였다.

이 장관은 한나라당 보고가 취소되자 오전 11시 반으로 잡혀 있던 통일부 정례 브리핑을 1시간 앞당긴 뒤 자신의 발언에 대한 해명했다.

이 장관은 “서해상의 무력 충돌을 막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하려는 노력이 그동안 부족했기 때문에 앞으로 더 노력해야 한다는 뜻에서 한 말”이라며 “폭넓게 이해해 주시고 더는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그는 ‘반성’이라는 표현을 쓴 것에 대해 “사전 원고가 없는 즉석 발언이었기 때문에 반성에 특별한 의미를 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장관의 해명은 설득력이 없다는 견해가 많다.

서해교전은 북한의 NLL 무단 침범과 기습공격으로 시작된 만큼 무력 대응 말고는 남한이 선택할 수 있는 어떤 방법도 없었기 때문. ‘방법론’에서 반성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장관은 NLL 재설정에 대해서도 “남북이 ‘해상불가침 경계선 획정을 위해 앞으로 계속 협의한다’는 1992년 남북 기본합의서를 존중한다”고 말해 새로운 논란의 불씨를 남겼다.

▽“정당방위를 왜 반성하나”=서해교전 당시 전사한 윤영하 소령의 아버지 윤두호(65) 씨는 이날 본보와의 통화에서 “장관의 자질이 있다 없다 따지기 전에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할 말이 아니다”라며 “더는 할 말이 없다”고 했다.

해군 참모총장을 지낸 안병태 한국해양전략연구소장은 “북한의 기습으로 국군 6명이 전사하고 18명이 다쳤는데 반성이라는 게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며 “희생자들의 공훈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말이냐”고 되물었다. 안 소장은 “이 장관의 발언은 (희생한) 국군 장병들을 모욕하는 말”이라며 “앞으로 군인들에게 어떻게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키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재향군인회도 16일 성명에서 “북한의 기습 침범에 대해 교전규칙에 따라 대응한 해군의 정당방위 행동이 왜 반성해야 할 일인지 (이 장관은)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상록 기자 myzodan@donga.com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 李통일 발언 ‘배경’ 있나

이재정 통일부 장관이 잇달아 서해 북방한계선(NLL) 관련 논란을 야기한 데 대해 정치권에서는 2차 남북 정상회담 의제로 ‘NLL 재획정’ 문제를 다루기 위한 사전 포석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이 장관이 16일 “서해교전은 방법론에서 우리가 한 번 더 반성해 봐야 할 과제”라고 한 발언은 10일 “NLL은 영토 개념이 아니라고 본다”는 발언보다 한 걸음 더 나간 것이다.

이 장관은 17일 ‘NLL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논의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정상 간에 판단할 문제”라면서도 “NLL과 관련한 남북 간 합의 내용은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에 있으며 그 합의가 지금도 살아 있고 그것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 개인적 생각”이라고 말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이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무엇은 안 된다’든가 ‘이것만은 꼭 받아내라’는 부담을 지우기보다는 미래를 위해 창조적인 지혜를 모아 주시길 당부드린다”고 밝힌 것은 한나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상회담에서 NLL 문제를 다룰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NLL 의제 포함 여부에 대해 “의제는 우리가 제기하는 것이 있고 상대가 제기하는 것이 있다. 상대가 제기할 것을 포함한 모든 의제를 망라해서 점검하고 있다”며 즉답을 피해 왔다. 그는 ‘이 장관의 잇단 NLL 관련 발언이 재획정 문제를 정상회담 의제에 포함시키려는 포석 아니냐’는 질문에 “상대방이 있는 회담에서는 있을 수 없다. 그런 식으로 문제를 연결시키는 것은 비약”이라고 했다.

북한은 정상회담에서 ‘NLL 재획정’을 거론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최근 남북 장성급회담에서 북한은 ‘NLL은 비법적인 선’이라며 재획정을 요구했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 NLL 왜 중요한가

국방부는 북방한계선(NLL)이 54년 동안 실질적인 남북 해상경계선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지상의 군사분계선과 같은 성격으로 본다는 태도를 확고히 하고 있다.

북측과 합의한 것은 아니지만 휴전 당시 쌍방의 전력 배치 상황과 정전협정 조문(2조 13항) 해석에 따라 적법하게 설정된 해상 군사분계선이라는 것.

국방부는 특히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에 ‘남과 북의 해상 불가침구역은 해상 불가침 경계선이 확정될 때까지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해 온 구역으로 한다’고 규정한 것은 북측도 NLL을 인정한 것으로 보고 있다.

NLL은 1953년 8월 마크 클라크 유엔군사령관(미국 육군 대장)이 우방의 함정 및 항공기 초계활동의 북방 한계를 규정해 양측의 충돌을 방지한다는 목적으로 선언한 선이다. 1951년 7월 10일 이후 2년여 동안 계속된 정전협상 과정에서 유엔군 측과 공산군 측이 지상 군사분계선(MDL)과는 달리 해상경계선에 대해서는 이견을 좁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NLL의 전략적 가치=전문가들은 이재정 통일부 장관과 일부 범여권 인사들의 NLL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NLL의 전략적, 군사적 가치를 간과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북측이 끊임없이 NLL 재설정을 주장하는 것 자체가 NLL의 전략적 중요성을 입증하고 있다는 것.

전문가들은 NLL을 양보할 경우 백령도 등 서해 섬들은 물론 수도권까지 북한의 위협을 받을 수 있으며, 나아가 북측이 군사적 우세를 확보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경제적인 의미도 적지 않다. 북측이 주장하는 해상분계선을 따르게 되면 서해의 어장 1만여 km² 이상을 북측에 내주게 된다.

▽북한의 NLL에 대한 주장=북한은 NLL 획정 이후 20년 동안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다가 1973년 제346차 군사정전위원회에서 비로소 문제 삼기 시작했다.

북한은 1953년 정전 직후 유엔사 측이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그어 놓은 ‘비법적인 선’인 만큼 정전협정은 물론 국제법 위반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은 1999년 6월 제1차 서해교전(연평해전) 이후 NLL에 대한 공세를 본격화했다. 북한 해군사령부는 후속 조치로 2000년 3월 23일 ‘서해 5개 섬 통항질서’를 발표하고 남측 선박은 지정한 2개 수로를 통해서만 서해 5개 도서로 운항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 2002년 6월 서해교전이 발생했다.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