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19세기 콜레라는 [ ]가 물리쳤다

  • 입력 2007년 8월 18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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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제공 웅진지식하우스
그림 제공 웅진지식하우스
세계 대양지도를 통해 바빌로니아의 세계관을 표현한 점토 서판(기원전 600년경 제작). 사진 제공 웅진지식하우스
세계 대양지도를 통해 바빌로니아의 세계관을 표현한 점토 서판(기원전 600년경 제작). 사진 제공 웅진지식하우스
◇지도박물관/존 클라크 외 지음·김성은 옮김/367쪽·2만 원·웅진지식하우스

19세기 중반, 영국에서 콜레라는 살인적 질병이었다. 1849년 한 해에만 죽거나 병든 사람이 5만 명에 이를 정도였다. 의사들은 이 콜레라가 어디서 왔는지, 그 의문을 규명하고자 했다. 그러나 속수무책이었다.

그때 런던에 살던 마취과 의사 존 스노는 물을 의심했다. 오염된 물이 주범이 아닌가 하고 추측했다. 그는 수많은 콜레라 피해자의 집을 일일이 방문한 뒤 지도를 만들어 그 위치를 표시했다. 콜레라 지도였다. 그 지도를 보니 공통점이 발견됐다. 그들의 상수도관이 모두 템스 강의 오염된 구역으로 향하고 있었다. 스노 박사는 곧 템스 강으로 향하는 관을 막아버렸다. 콜레라는 퇴치됐다. 지도가 콜레라를 물리친 것이다.

콜레라 지도라는 존재도 놀랍지만, 지도의 역할이 우리가 아는 것 이상으로 다양하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이 책엔 이처럼 지도의 다채로운 세계가 가득하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4000여 년 전 메소포타미아 흙판 지도, 기원전 1세기에 만든 로마시대 최초의 대형 여행지도, 고대 페루 나스카 사막에 그려진 불가사의한 거대 지도, 장대한 미술품을 연상시키는 19세기 말 미국 뉴올리언스와 미시시피 지도, 우주 탐험의 꿈이 담긴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우주탐사 지도에 이르기까지 100점의 지도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지도에 관심이 많은 영국의 역사학자, 출판인, 작가 등 7명이 함께 썼다.

책을 읽다 보면 지도에 단순한 지리 정보뿐만 아니라 당대 사람들의 세계관, 이데올로기, 나아가 예술 세계까지 담겨 있음을 알게 된다.

16세기 초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군사 지도를 그렸다는 사실도 놀랍다. 그는 이탈리아 이몰라 지역의 군사 방어시설 건설을 위해 요새를 탐방하고 군사 지도를 그렸다. 원형 구도에 은은한 채색으로 무척이나 아름답게 그렸으니 ‘역시 다빈치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사람이 지도를 만들었지만 그 지도가 사람 세계에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정치 선전 도구로 이용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과 연합군은 지도를 만들어 전쟁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나치의 지도를 보면 나치 점령지를 유토피아인 것처럼 그려 놓았다.

지하철 노선 지도를 ‘추상 미술의 절정’으로 평가하는 저자들의 시각도 흥미 만점. 흔히 보는 지하철 노선도는 1933년 영국의 전기배선 도면 제작자인 해리 백이 런던 지하철 노선도를 그리면서 시작됐다. 전기배선도처럼 핵심 정보만 간단히 보여 주면서 예술품 같은 지도를 만든 것이다.

지도는 제작자의 생각, 그 시대의 가치관에 따라 달리 표현된다. 그래서일까. 저자들은 이 책의 맨 뒤에 남반구 북반구가 뒤집힌 낯선 세계지도를 수록해 놓았다. 이 지도에선 호주가 중심이 된다. 생각을 바꾸면 지도도 바뀐다는 것을 웅변하는 대목이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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