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전세계 상대 잇단 무력시위

  • 입력 2007년 8월 17일 03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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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출격하면 미군 비행기가 날아와 조종사들끼리 공중 대화를 나눌 기회가 많다.”

최근 전폭기를 타고 태평양 미군기지인 괌까지 장거리 비행을 마친 러시아 공군 조종사들이 러시아 언론에 흘린 말이다.

요즘 러시아군이 전 세계를 상대로 무력시위를 하고 있다.

러시아 공군은 14일 TU-95 베어H 등 전략폭격기 40대를 태평양, 대서양, 북극 등 본토와 떨어진 공해 상공으로 각각 보내 크루즈 미사일 발사 훈련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러시아 공군은 전폭기를 태평양 괌까지 보내 전투력이 건재함을 과시했고, 해군도 시리아에 있는 러시아 해군기지에 전투함을 배치해 지중해 연안까지 작전 반경을 넓히겠다는 의도를 내비쳤다.

군사전문가들은 “러시아군의 잇따른 무력시위는 국제무대에서 러시아의 지위를 끌어올리는 한편 올해 12월 총선과 내년 3월 대선에서 집권 여당의 입지를 굳히는 데도 일조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무력시위를 주도하는 군 수뇌부는 “미국 중심의 일극 체제를 무너뜨리는 데 러시아군이 앞장서야 한다”고 공언하고 있다. 군 수뇌부의 거침없는 행보는 러시아가 미국의 동유럽 미사일방어(MD) 체제 구축 계획에 맞선 이후 두드러지고 있다.

모스크바 카네기센터의 한 연구원은 “미국이 동유럽 MD계획을 내놓고 러시아를 설득하는 모습을 보인 순간 러시아는 어느덧 미국의 대화 파트너가 돼 위세를 떨치게 됐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10분의 1인 러시아의 국방 예산 규모로 볼 때 러시아가 미군기지 앞까지 군사력을 전진 배치할 것으로 내다보는 전문가는 드물다. 무력시위가 ‘군사 쇼’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하지만 쇼를 통해 잃을 것보다는 얻을 게 많아 보인다. 아나톨리 츠가노크 러시아 정치군사연구소장은 “무력시위가 러시아 안팎에서 미국의 ‘절대 권력’에 대응하는 수단으로 비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무력시위는 여당 후보군의 이슈 선점에도 활용되고 있다. 러시아 최대 항공지주회사인 통합항공사(UAC)는 16일 “2025년까지 전투기와 민항기 4500대를 만들겠다”고 밝혀 이목을 끌었다. UAC 회장은 크렘린의 신임을 받는 유력 대권주자 세르게이 이바노프 제1부총리다.

모스크바=정위용 특파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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