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그분’들도 즐겨찾던 동해비경… 강원도 화진포 여행

  • 입력 2007년 8월 17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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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가 남북으로 나뉘기 이전인 1930, 40년대 최고의 해변 휴양지는 과연 어디였을까. 그 답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해변 휴양’이란 것이 우리네 생활 방식은 아니었으니 당시 주한 외국인의 행적에서 찾으면 될 터이다. 동아일보를 뒤적이면 답이 나온다.

그곳은 북한 원산의 명사십리 해변이다. 당시 이곳에는 주한 외국인의 여름 휴양촌이 자리 잡았다. 바다로 깊숙이 돌출한 갈마반도 동편에 십리나 펼쳐진 황금빛 모래해변, 그 해변 뒤로 자리 잡은 호수, 평양과 경성(현재의 서울)을 연결하는 편리한 철도. 프랑스 지중해변의 니스를 꼭 닮아 한여름이면 반라의 외국인이 펼치는 ‘망측한’ 이국적 풍광이 장안의 화제가 됐다.

이런 시기도 잠시. 1937년 대륙 침략의 일환으로 중-일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갈마반도에 공군기지를 건설하면서 모든 민간시설을 소개했다. 명사십리 해변의 휴양촌도 역시 사라졌다. 그렇지만 외국인들이 여름철 해변의 유혹을 물리칠 수는 없었다. 일본은 그들을 위해 다른 휴양 해변을 찾아주어야 했다.


촬영: 조성하 기자

이렇게 해서 선택된 곳이 화진포(강원 고성군)다. 철도(원산발 동해북부선)에 바다와 호수는 물론 멋진 산악까지 두른 기막힌 해변이었다. 화진포의 옛 김일성, 이기붕 별장은 당시 이전한 외국인 휴양촌의 시설이다. 그 화진포로 여행을 떠난다.

동해안이 인기몰이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뒤로는 멋진 산악, 앞으로는 파도치는 바다, 그 사이로 송림 두른 모래해변과 크지도 작지도 않은 호수 덕분이다. 원산부터 강릉까지 해변에 발달한 이 호수는 지반융기나 강의 퇴적물, 모래의 침전으로 생긴 사주가 점차 이어지면서 내륙에 갇힌 석호(潟湖·라군). 영랑호 경포 송지호 청초호 화진포 삼일포는 모두 석호다. 이 호수의 이름에‘호(湖)’와 ‘포(浦)’가 두루 쓰이는 것은 완전한 호수 모양을 갖추기까지 장구한 세월 바다로 물골이 트여 있었기 때문이다.


촬영: 조성하 기자

화진포가 그렇다. 뒤로는 금강산, 앞으로는 동해, 반달형의 고운 모래해변은 송림에 둘렸고 그 송림 뒤로는 멋진 호수가 펼쳐진다. 화진포의 명물이라면 김일성 별장이다. 지금은 깔끔하게 역사안보전시관으로 재단장돼 ‘화진포의 성’이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 화진포 해변과 송림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해안 절벽의 소나무 숲 속에 건축(1938년)된 이 건물은 당시 외국인 휴양촌의 예배당이었다. 나치 정권을 거부하고 망명한 독일인 H베버의 작품이다.

1945년 38선을 경계로 남북이 분단되면서 화진포는 북한 땅에 편입됐다. 북한 치하에서 외국인 휴양촌은 정양소(교화소)로 활용됐고 이 예배당은 귀빈관으로 이용됐다. 김일성의 처 김정숙은 김정일 등 자녀를 데리고 와서 귀빈관에 머물곤 했다. 이로써 귀빈관은 ‘김일성 별장’이란 별칭을 갖게 됐다. 별장으로 오르는 가파른 계단에는 1948년 8월 어린 김정일이 당시 소련군 제25군 정치사령관 리베데 소장의 아들 등과 함께 그 자리에서 찍은 사진(복사)이 전시돼 있다. 현재 건물은 1999년 원래 모습에 근사하게 다시 지어진 것이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별장은 김일성 별장에서 1km쯤 떨어진 호숫가 언덕에 있다. 단층 슬라브 형태의 이 별장은 이 대통령 내외의 유품전시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실내에는 침실과 집무실, 거실이 옛 모습대로 복원돼 있고 벽과 유리장에는 학위증 등 유품이 전시되어 있다.

이기붕 별장은 해변의 송림에 있다. 바다와 해변, 산과 호수 사이에 우거진 송림 한가운데 자리 잡아 풍광이 빼어나다. 부채꼴 모양의 단층에 현관 거실 침실 등 방 세 칸이 병렬로 배치된 특이한 구조인데 실내에는 이기붕보다 부인 박마리아에 관한 전시물이 더 많다. 역시 선교사들이 공동으로 이용하던 휴양소였다.

현재 화진포는 호반과 해변을 두루 망라해 종합관광지로 꾸며져 있어 가족여행은 물론 연인들의 데이트코스, 학생단체여행 코스로 이용하기에 좋다. 현대식 건물의 해양박물관과 더불어 고인돌 유적지, 호반 6.5km 마라톤코스가 있다. 또 해변의 넓은 주차장에는 고성군관광안내소도 자리 잡고 있어 인근 통일전망대와 금강산 건봉사, 마차진과 명파 등 해수욕장에 관한 관광정보도 쉽게 구할 수 있다.

고성=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촬영: 조성하 기자

▼ 1938년 8월 12일자 동아일보속 화진포 풍경▼

嶺東十洲鴻爪記(영동십주홍조기)

仙俗結緣(선유결연)턴 花津浦(화진포)

白色“候鳥”(백색후조)의 夏棲地(하서지)

[花津浦畔(화진호반)에서 趙中玉 記(조옥중 기), 趙源衡 寫(조원형 사)]

아즉도 남쪽으로 쌍성(雙成) 경포(境浦) 망양(望陽) 등 주요 호수가 남엇으나 바뿐 순레에 건강을 상하야 돌아가는 길에 화진포(花津浦)나 들리고저 북행차를 잡아타니 차중에는 화진포 이야기로 꽃이 피엇다.

“양코”들이 원산 명사십리(明沙十里)에서 별장을 떠가지고 화진포 호변으로 와서 게딱지 같은 어촌을 씨러버린 후 날러갈뜻한 층층집을 짓고 히히낙낙(喜喜樂樂)거린다는 것이다.

철마가 현내(縣內)역에 정거하엿을 때 『차창으로 내다보니 바로 백주에 마중나온 남자 양코가 차에서 나리는 여자 양코와 입을 맞추드라고.』

五十가량 되어 보이는 갓쟁이가 자리에서 이러서서 떠들석 한다.

퍼리똥싼 매꼬자와 도리우찌 왕눈이… 들이 갓을 둘러싸고 두 눈만 뚱그라케 흡떳다.

갓쟁이는 말끝마다 “양코양코” 하고는 이상한 쾌감까지 느끼는 모양이다.

一당을 두세칸 떠러진 자리에 모르는 체하고 앉엇든 참말로 양코가 어이가 없는지 찬미소만 흘리고 잇다.

이윽고 철마가 현내역에 머물엇을 때는 오후 三시. 이칸 저칸에서 벽안고비(碧眼高鼻)몇 자웅이 나린다. 역에는 마중나온 몇 사람의 백인(白人)들이 쑤왈쑤왈 짓거리고.

갓쟁이 말마따나 참으로 포옹을 하는 젊은 남여가 잇다.

차창에는 영양부족으로 두루띵띵한 一당들의 상판이 개살구처럼 열엇다.

양인들은 역에서 동남쪽으로 몰려간다.

백인들은 걸어가며 혹은 꽃을 꺽고 풀을 뽑고 창공을 우러러 코노래도 부르고 혹은 찬송가 혹은 아리랑타령까지 부르고는 폭소(爆笑)를 하는 것이다. 걸내쪽 같이 길가에 널린 우막 속에서 이 땅의 백성들이 뛰어나와 신기한 눈초리로 넋일코 섯다.

이 얼마나 무서운 양쪽의 대조이리. 몸써리치는 관경이 안일가.

늙은 부부 두 사람이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앞서간다.

기자가 뒤따러가며 그들의 이야기를 토막 토막 줏은 바를 종합하면 이러한 사연이엿다.

화진포 앞에는 九萬리 동해 창파요 뒤에는 금강평풍

물조코 산조코 숩조은 바로 동양의 도원동(桃源洞) 같은 곳이 자기들의 피서지니 한여름 질탕 놀고 뛰고가자는 것이엿다.

남자의 음색(音色)에 연분홍빛 몰드라.

얼마를 뒤따라가다

“우리의 보금자리가 저기요”하는 소리에 손짓하는 쪽을 보니

푸른물 푸른산 푸른하늘 푸른바다 푸른솔….

푸른 천지에 여기저기 울울창창한 솔사이로 뽀이얀 양옥이 점점 호면우엔 백구가 쌍쌍.

명사우엔 양장(洋裝)과 반나체(反裸體)도 쌍쌍.

한폭의 그림이요 “필임”이요 히랍(希臘)처럼 고풍(古風)이 넘치고 파리(巴里)처럼 미(美)하다. 그윽한 이국정서(異國情緖)에 만취하야 얼마를 넋일코 바라보다.

산등길을 나리어 모래밭으로 것노라니 호수쪽에서 한떨기 힌백합(白百合)처럼 뽀야케 차린 여인이 뛰어오며 “용서 하세요” 한다.

용무를 물엇드니 자기는 “미시스 에스”라 하며 화진포에 대한 전설을 좀 말하여 달라는 청이다.

기자 역시 초면인 화진포에 대한 전설이란 너무나 속몰으는 주문이엿다.

그러나 다시 한번 도리켜 생각할 때 이땅에 나서 이땅에 사는 한 백성으로써 자기 집 울안의 이야기를 몰은다고 하는 것은 큰수치인 것 같다 (더구나 상대가 여자임에야) 뿐만 아니라 오늘날 화진포의 주인공이 그들로 된 이상 호수를 싸고 새주인들의 사는 생활을 아는 것이 무엇보다도 궁금하고 긴요한 일이엿으므로 여인과 이야기를 게속코저 즉시 승낙을 한 다음 오다가 차중에서 어떤 백발(白髮)노인한테서 얻어들은 이야기를 얼거매는 것이엿다 (호변에 앉어).

이야기를 듣고 난 에스 양은

“원더풀” 원더풀 하드니 마츰내 기자가 기대하든 이야기를 끄내는 것이다.

이곳에 모인 서양인은 현재 남녀 二百五十여명인데 미국 카나타 독일 블란서 정말인 듯 일견 인종전람회(人種展覽會)의 장관이 잇다하며 조선인도 쿡(밥짓는 사람)으로 한목 본다고 간도 회령 함홍 원산 서울 평양 대구 등 전국 각지에 산재하야 혹은 목사 의사 전도사 교수 노릇을 하는 백인종들이 후조(候鳥)처럼 날러와 七八월 동안 염제(炎帝)를 비웃으며 건강을 장만한다는 것이다.

등산(登山)을 즐기는 산악당(山嶽黨)은 등산을 하고바다를 즐기는 해양파(海洋派)는 해수욕을 하고 호수를 사랑하는 애호족(愛湖族)은 호상에 배 띠우고 또 다른 취미족들은 정구 탁구 음악 산보 레코-드 딴스…. 마음가는 대로 절대자유의 생활을 하며 인생을 향락한다고.

또한 화진포에는 화진포만의 도덕이 잇고 예의가 잇고 하날과 동해와 금강산과 모래받과 해와 꽂별들이 모다 화진포를 위하야 마련된 듯 싶다고 절찬하며 화진포는 “지구의 오하시스”라는 것이다.

게속하에 에스 양은 노송 사이에선 청아한 양옥집을 가르키며 저 집이 자기가 사는 집으로 그 속에는 성경이 한권 시집이 한권 끼-터 하나 외에 간단한 침구가 잇을 뿐.

창(窓)은 호수쪽에 두개가 잇어 항시 그윽한 호심을 바라보며 천국(天國)의 꿈을 꾼다고. -끝-


촬영: 조성하 기자

▼ 여행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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