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807년 상업용 증기선 첫 운항

  • 입력 2007년 8월 17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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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 밑의 화덕에 불을 피워 바람과 해류를 거슬러 가는 배를 만든다고? 실례하네. 그런 황당한 얘기를 들어줄 시간이 없네.”(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의 로버트 풀턴 편)

‘불가능’이라는 말을 경멸한 프랑스의 나폴레옹조차 미국인 발명가 로버트 풀턴의 제안은 믿기지 않은 모양이다.

1765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태어난 풀턴은 원래 화가 지망생이었다. 산업혁명의 진원지인 영국에서 그림 공부를 하다가 우연히 증기선 기술에 눈을 떴다. 도버 해협 너머 영국을 호시탐탐 노리던 나폴레옹에게 증기선 건조를 제안한 것도 그였다.

1807년 8월 17일 미국 뉴욕 허드슨 강.

강변에 사람들이 모였다. 시선은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시속 8km의 속도로 물살을 헤치고 움직이는 길이 40m, 폭 5m의 ‘괴물 선박’에 온통 쏠려 있었다. 증기선 ‘노스리버(North river)’호였다. 나폴레옹에게 외면당했던 그 ‘바보 풀턴’의 작품이었다.

배는 승객을 태우고 허드슨 강을 따라 이틀간 뉴욕에서 240km 떨어진 올버니까지 운항했다. 장거리 운항에 성공한 상업용 ‘증기선 시대’의 막이 오르는 순간이었다. 동시에 인류 역사를 지배한 ‘범선(帆船)의 시대’도 수평선 너머로 저물기 시작했다.

‘세상은 2등을 기억하지 않는다?’

그럴까. 증기기관과 증기선은 풀턴의 머릿속에서 처음 나온 게 아니다. 증기기관 개념은 17세기 말 프랑스에서 나왔다. 1769년 영국의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에 대한 첫 특허를 받았다. 1780년대 이미 50km 정도를 갈 수 있는 초보적인 증기선도 있었다. 풀턴은 이미 알려진 아이디어를 갈고 닦아 ‘상업용 증기선’이라는 신천지를 개척했다. 그의 이름이 200년 후에도 전해지는 이유다.

‘풀턴의 후예들’은 21세기 한국에도 있다. 19세기 서구의 증기선인 ‘이양선’의 습격에 당황했던 한국은 이제 선박을 육지에서 건조하는 육상공법 등 발상의 전환으로 세계 조선업계의 선두에 올라섰다.

세계 각국에서 일감이 밀려들자 현대중공업은 최근 국내 최대 규모의 10번째 ‘독(Dock·선체를 최종 완성하는 장소)’을 새로 짓기로 했다. 풀턴과 한국 조선업계의 장인들은 살던 시대와 국적은 달라도 어딘가 닮았다. 낡은 아이디어를 빌려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조하는 ‘도전과 혁신의 DNA’가 아닐까.

박용 기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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