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만나는 시]이영광/‘오래된 그늘’

  • 입력 2007년 8월 17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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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그늘

- 이 영 광

늙은 느티의 다섯 가지는 죽고

세 가지는 살았다

푸른 잎 푸른 가지에 나고

검은 가지는 검은 잎을 뱉어낸다

바람이 산천을 넘어 동구로 불어올 때

늙은 느티의 산 가지는 뜨거운 손 내밀고

죽은 가지, 죽은 줄 까맣게 잊은

식은 손을 흔든다

한 사나이는 오래된 그늘에 끌려들어가

꼼짝도 않고

부서질 듯 생각노니,

나에게로 와서 죽은 그대들

죽어서도 떠나지 않는 그대들

바람神이 산천을 넘어 옛 동구에 불어와

느티의 百年 몸속에서 윙윙 울 때

- 시집 '그늘과 사귀다'(랜덤하우스) 중에서》

무엇이 백 년 느티 그늘 아래 선 시인의 한쪽 머리를 푸르게 만들고, 다른 쪽 머리를 까맣게 만들었을까. 뿌리로 줄기로 가지로 내달리던 생각의 관다발을 누가 막아버린 것일까. '죽은 줄 까맣게 잊고 식은 손' 내미는 저 가지는 명년에도 '오래된 그늘' 드리울 수 있을까. 내게로 온 모든 '너'들을 꽃으로 만들고 잎으로 피울 수는 없을까. 그러나 모든 빛의 이면은 그늘이 아니던가. '나에게로 와서 죽은 그대들' 안타깝지만, 혹시 저 삭정이도 꽃은 아닌가?

-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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