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에도 ‘세계시민’은 낭만적인 철학자들의 이상론 정도로 여겨져 왔다. 지식인사회에 이 말이 다시 등장한 것은 세계화 열풍이 불어 닥친 최근의 일이다. 경제적 세계화뿐 아니라 모든 이방인을 포용하는 인간애(人間愛)의 세계화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각성 때문이다. 세계화의 반작용으로 일부 지역에선 오히려 민족주의 장벽이 높아지고 있으므로 세계시민주의가 더 절실하다는 주장도 있다.
▷한국은 세계화 수혜 국가다. 1960년대 고도성장은 ‘작은 세계화’ 덕을 톡톡히 본 결과다. 세계경제의 50%를 차지하던 미국은 자국 내 임금의 급상승으로 값싼 해외노동력을 찾고 있었다. 1순위 후보는 남미(南美)였으나 카스트로의 공산혁명으로 좌경화 바람이 휩쓸고 있어 포기했다. 냉전시대여서 중국과 소련도 제외됐다. 아프리카와 중동도 종교와 문화 차이로 대상에서 빠졌다. 남은 곳은 한국과 대만을 비롯한 몇몇 아시아 국가뿐이었다. 우리가 산업화를 이룬 데는 이처럼 운이 따랐다.
▷21세기 들어 세계화가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지만 우리의 세계화 인식은 낮다. 동아일보 부설 화정(化汀)평화재단 21세기평화연구소가 참여한 가운데 세계 39개국을 대상으로 이뤄진 2005∼2007년 세계가치관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인종적 폐쇄성은 세계 5위, 세계시민의식은 17위였다. 그렇다고 비관적인 것은 아니다. 옛말에 ‘곳간이 넉넉하면 예의를 안다’고 했다. 국내 거주 외국인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급속히 나아지고 있듯이 경제적 여유와 함께 세계시민의식도 높아지리라 믿는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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