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 배우자” 美고교 경제수업 열풍

  • 입력 2007년 8월 16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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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알아야 미래 있다”미국에서 최근 ‘미래의 경제 영재’를 키우기 위한 경제 교육 과정이 크게 늘고 있다. 딱딱하게만 여겨져 온 교육 내용도 최대한의 참여와 흥미를 이끌어 내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경제 알아야 미래 있다”
미국에서 최근 ‘미래의 경제 영재’를 키우기 위한 경제 교육 과정이 크게 늘고 있다. 딱딱하게만 여겨져 온 교육 내용도 최대한의 참여와 흥미를 이끌어 내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딱딱하고 어렵다” 선입관 깨고 재학생 87%가 수강

돈버는 法 등 주제 다양… ‘주식시장 게임’도 인기

미국 뉴저지 주 버겐 카운티의 조이스킬머 초등학교를 최근 졸업한 마크 레빈(11) 군은 종종 월스트리트저널의 주식시세표를 들여다보곤 한다.

지난해 친구들과 함께 팀을 이뤄 주식 투자를 한 경험 때문이다. 당시 투자액은 총 10만 달러. 물론 ‘진짜 돈’은 아니었다. 투자게임 등록비 25달러를 내고 받은 ‘가상의 돈’이었다.

레빈 군은 가상의 10만 달러를 운용하는 과정에서 때론 주식중개인들을 직접 인터뷰하며 주식 거래 요령을 배웠다. 지도 교사와 함께 ‘좋은 주식 판별하는 법’ 등 기본적인 사항도 공부했다. 레빈 군 팀은 10주간 10만 달러를 운용해 약 4.5%(4466달러)의 수익률을 올리며 뉴저지 주 초등학교 부문에서 2위를 기록했다.

레빈 군이 참가한 가상 주식 투자 게임은 뉴욕증권거래소가 후원하고 있는 ‘주식시장게임(The stock market game)’으로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교 3학년까지 참가할 수 있다.

자본주의 최전선에 있는 미국에선 이처럼 자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경제 영재’를 키우기 위한 경제교육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10주간 진행되는 주식시장게임에 2001년까지는 매년 20만 명 정도가 참가했으나 지금은 참가 규모가 매년 70만 명에 이른다. 1977년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1000만 명이 이 교육 과정을 이수했다.

미국에서 ‘시장 배우기 교육’의 인기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척도 중 하나가 고교 경제학 과목의 인기다.

경제학은 ‘딱딱하고 어려운 과목’으로 여겨지지만 ‘대학 과목 선이수제도(AP)’를 통해 거시경제학 코스를 가르치는 고교가 2600여 개, 미시경제학 코스를 가르치는 학교가 2100여 개에 달한다.

미국에선 전체 주(州)의 3분의 1만 경제학을 고교 필수과목으로 지정했다. 하지만 지난해 미 교육부가 고교 졸업반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재학 중에 경제학을 한 번도 배운 적이 없다는 학생은 단 13%에 불과했다. 나머지 학생은 어떤 식으로든 경제학을 접해 봤다는 뜻이 된다.

이처럼 미국 학교에서 경제학이 붐을 이루는 것은 경제학에 대한 ‘수요와 공급’이 모두 늘었기 때문. 경제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널리 퍼지면서 일찍부터 경제학을 배우려는 학생이 급증했다. 특히 교육수준이 높은 학부모일수록 조기 경제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비영리단체가 주도하는 각종 경제교육 등 ‘공급’도 크게 늘었다. 국민이 경제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미국 국가경쟁력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기업은 물론 비영리단체를 중심으로 일선 학교에 다양한 경제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미국 최대의 비영리 경제교육기관 JA(Junior Achievement·청소년의 성취)가 제공하는 프로그램의 경우 매년 351만 명의 학생이 참가하고 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돈을 버는 법, 신용관리 요령, 기업가정신 등을 가르친다.

공공기관들도 경제교육에 열심이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은행(FRB)은 경제교육을 위한 별도 홈페이지(www.federalreserveeducation.org)를 운영하고 있다.

접근하는 방식도 ‘카트리나 사건을 통해 본 보험과 은행계좌의 중요성’ 등 구체적이고 실질적이다. DVD로 제작한 경제 강의에는 실제 카트리나 피해자가 등장해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경제교육뿐 아니라 최근 미국 사회 전반에선 경제학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는 추세다. 천재 경제학자로 꼽히는 스티븐 레빗 시카고대 교수가 쓴 ‘괴짜 경제학(Freakonomics)’은 몇 년째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수위를 지키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레빗 교수의 칼럼을 매주 뉴욕타임스 매거진에 게재한 데 이어 최근에는 홈페이지에 ‘괴짜 경제학’ 별도 블로그(freakonomics.blogs.nytimes.com)를 마련했다.

“빈곤해결에 가장 중요한 것은?”

美고3 첫 경제학 시험… 절반이 “경제성장” 정답맞혀

경제학 퀴즈 하나.

‘다음 중 장기적으로 빈곤을 해결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세금 ⓑ경제 성장 ⓒ국제무역 ⓓ정부 규제

정답은 ⓑ다. 일각에선 세금을 더 걷어서 재분배를 하는 것이 빈곤 해결에 효과적이라고 주장하지만, 경제학 원론에선 장기적으로 빈곤을 해결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경제 성장’을 꼽는다.

이 문제는 미국 교육성취도평가원이 고교 3학년생을 대상으로 올해 처음 실시한 경제학 시험에 출제됐다. 그동안 미국에서 전국 단위 경제학 시험은 실시된 적이 없다. 그런데 최근 미국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는 학생이 급증하자 고교 3학년생 1만1500명을 대상으로 성취도 검사를 실시한 것. 평가 대상 중 이 문제의 정답을 맞힌 학생은 53%였다.

자유무역에 관한 질문도 있다.

‘무역을 하고 있는 두 나라가 거래되는 상품에 부과되는 모든 제한을 없애면 다음 중 무엇이 줄어드는지를 고르시오,

ⓐ거래되는 상품의 다양성 ⓑ수입품 가격 ⓒ거래되는 물건의 품질 ⓓ수입품의 양

정답은 ⓑ, 맞힌 비율은 51%였다.

조금 까다로운 문제도 있다.

‘때로는 어떤 국내 산업이 의회를 압박해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하도록 하는 데 성공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 문제에 대한 정답은 ‘관세 부과에 따라 어떤 소비자 한 사람에게 추가되는 비용은 적은 반면 해당 산업 전체가 얻는 이익은 크기 때문’이다. 정답을 맞힌 비율은 40%.

‘비슷한 인구와 자연자원을 갖고 있는 X와 Y 국가 중에서 X가 Y보다 경제 성장률이 높다면 이유가 무엇일까’라는 문제의 정답은 ‘X가 교육에 더 많은 투자를 하기 때문’이었다. 정답 비율은 32%였다.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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