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교육원]새 길에서 찾은 꿈과 행복

  • 입력 2007년 8월 16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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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졸업하고 게임 회사에 다니던 20대 아가씨가 어느 날 사직서를 냈다. 같은 또래의 한 아가씨는 자신이 하고 있던 논술 교습과는 다른 분야를 발견하고선 몸이 달아올랐다.

게임 회사를 다녔던 아가씨는 2년이 지난 지금 영상음악작곡가의 길을 걷고 있다. 논술 과외교사였던 아가씨는 매너 서비스 강사라는 직업이 자신과 궁합이 꼭 맞을 줄 몰랐다고 말했다.

놀라운 변신은 아가씨에게만 일어난 게 아니다. 결혼한 뒤 취미로 시작한 꽃꽂이에서 뭔가 부족한 것이 있다고 느낀 한 주부는 50대에 대학교수로서의 삶을 새로 시작했다.

가난한 산골에서 ‘여식’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화가의 재능을 죽여야 했던 또 다른 50대 주부는 전통민화 연구원을 차려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영상음악작곡가 이소영(28) 씨, 매너 서비스 강사 서수경(28) 씨, 서원대 화예장식학과 김혜자 교수(57), 호정전통민화연구원 서민자(52) 원장은 대학의 ‘평생교육’ 덕분에 인생의 행로를 바꿀 수 있었다.

“평생 교육, 어쩐지 조금 한가롭고 나른한 분위기가 난다”는 도발적인 질문에 그들은 “취미 삼아 평생교육원에 다니는 사람은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택한 사람들의 진지함을 보았느냐고 되물었다. 학창 시절보다도, 8월의 태양보다도 더 뜨겁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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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교육원서 인생을 바꾼 네 사람 이야기

○가슴 속에 있던 삶

게릴라성 호우가 오락가락하다 태양이 이글거리던 8월 5일 연세대 교정에서 이들을 만났다. 20대와 50대라는 나이 차는 무의미했다. 배움의 재미를 얘기하는 데 세월은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

프리랜서 영상음악작곡가 이소영 씨. 하얀 피부와 긴 머리카락을 가진 이 씨는 몇 년 동안 자신의 가슴 속에서 끊임없이 솟아오르던 질문의 답을 찾았다고 했다.

연세대 음대 작곡과를 나온 그는 게임 회사에 다니던 내내 ‘내가 원하는 삶은 이런 것이 아니잖아?’라는 자신으로부터의 끊임없는 질문에 시달려야 했다. 영화와 뮤지컬 음악에 관심을 많았다.

하지만 국내에서 이 분야를 제대로 가르쳐주는 곳은 없었다. 유학을 결심할 만큼 생활이 넉넉하지도 않았다. 부유(浮游)의 삶이었다.

일상이 자신의 욕망을 삼켜 버리기 직전, 그는 인생의 실마리를 손에 쥘 수 있었다. 자신의 고민을 들었던 친구가 연세대 사회교육원의 ‘영상음악 전문가 과정’을 추천했다. 영화와 드라마, 광고 등에 쓰이는 음악을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는 곳이었다.

그곳에는 자신의 대학 시절 은사이던 교수님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1년간 주말을 반납한 생활을 했다. 드디어 자신이 꿈에 그리던 영상음악작곡가로 첫발을 뗄 수 있었다.

“내 삶에 불안하거나 초조하지 않게 됐다. 나는 이제 회사원이 아닌 뮤지션으로 살아가고 있다.”

○사라지지 않는 열정

전통민화연구원을 운영 중인 서민자 씨가 이 씨의 이야기에 맞장구를 쳤다. 자신은 늘 화가를 가슴 속에 품고 살았다고.

그는 경북 상주의 산골에서 태어나 23세에 결혼을 했다. 고교 은사는 그림 재능을 살려야 한다며 서 씨의 부모 앞에 무릎까지 꿇고 애원했지만 당시 집안의 경제력은 서 씨에게 학업의 길을 열어줄 수 없었다.

8남매 종갓집 맏며느리로서의 삶이 녹록지 않았지만 그림에 대한 열정을 완전히 접지는 않았다. 독학으로 서양화 공부도 했다. 그러다 우연히 민화를 접하고선 전통 그림의 매력에 푹 빠졌다.

서 씨는 두 자녀가 대학에 들어간 40대 후반의 나이에 결국 명지대 사회교육원 전통공예과의 문을 두드렸다.

그림에 대한 열정으로 공부를 시작했지만 등록금이 만만치 않았다. 위기는 곧 기회였다. 남편의 월급만으로는 대학에 다니는 두 아이의 등록금을 대기에도 빠듯해서 각종 공모전에 작품을 출품했다. 민화 수강생을 지도하며 학비를 벌기도 했다.

인생은 새옹지마(塞翁之馬)다. 2006년 대한민국 전통공예대전에서 초대 작가상을 수상하는 기쁨을 누렸다. 당연히 인생도 달라졌다.

“남들이 잠든 밤에만 내 작품을 준비해야 하는 힘든 생활이었지만 피곤한 줄 몰랐다. 꿈에도 그리던 좋아하는 일이었다.”



나이는 숫자일뿐… 뜨거운 배움의 열정

○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으로

이날 오전 4시까지 일을 했다는 서수경 씨는 “자신이 선택한 일이기 때문에 가능한 밤샘”이라며 웃었다.

서 씨는 타고난 매너 서비스 강사였다. 그는 식당에서 불친절한 서비스를 받으면 어떻게 하는지를 다른 사람들에게 물었다.

“저는 주인이나 지배인을 불러서 얘기를 합니다. 그렇다고 따지는 것도 아니고 화를 내는 것도 아닙니다. 조금만 서로 신경을 쓰면 기분이 좋을 수 있는 보석 같은 순간을 놓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을 뿐입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논술 과외 교사 생활을 하며 교사 임용시험을 준비했다. 그러다가 단지 ‘안정적인 직업’이라는 이유만으로 교사직을 준비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 고려대 사회교육원을 찾았다.

‘초긍정주의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서 씨는 “내가 좋아하면서도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유로 매너 서비스 강사 과정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도전은 성공적이었다. 지금은 병원 직원과 대학의 평생교육원 강의, 대학생을 상대로 한 강의 등으로 몸이 2개라도 감당 못할 만큼 바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녀는 매너 서비스 강사 과정을 공부하면서 자신의 직업뿐만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가 바뀐 것을 스스로 만족스럽게 여기고 있다.

“다른 사람을 대하는 내 모습이 긍정적이고 세련되게 바뀐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변화다. 직업을 찾은 것도 중요하지만 내 삶 자체가 긍정적이고 활기차게 바뀐 것에 더 만족한다.”

○ 새로운 출발

50대의 김혜자 교수는 20대 젊은 여성과 인연이 닿아 ‘새 출발’에 대해 얘기할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뭔가 늘 부족한 것을 느꼈다”고 김 교수는 말했다. 결혼 후 취미로 시작한 꽃꽂이를 하면서 가졌던 생각이었다. 꽃꽂이를 배우면서 공부를 계속해 사범자격증을 땄다. 꽃장식이 필요한 곳에서 봉사활동도 했다.

취미로 시작한 꽃꽂이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전문가가 되었다. 일본, 미국, 영국, 독일 등 외국 작가들과 교류하며 시야를 넓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채워지지 않은 것이 있었다고 했다.

여전히 채워지지 않던 그 무엇을 이화여대 평생교육원 ‘꽃예술 최고지도자 전문교육과정’에서 찾았다. 다름 아닌 ‘이론’이었다. 미술의 기초 이론에 바탕을 둔 학문적인 접근은 그가 그토록 찾던 것이었다.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했다. 학점은행제 과정을 통해 학사 학위도 받았다. 평생교육원에서 만난 스승들은 그의 활동을 돕는 훌륭한 조력자였다. 강의 기회를 주었고 협회에서 일할 기회도 주었다.

학문적인 토대를 더 쌓아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50세를 넘긴 나이에 대학원 진학을 결심했다. 자신의 열정이 ‘돈 많고 시간 많은 아줌마의 사치’로 여겨질까 두렵기도 했다.

그는 열정이 바라는 대로 인생을 다듬어 갔다. 상명대 미술학과에 한국화전공으로 입학해 학위를 받았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 지금은 상명대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2006년 전환기를 맞았다. 충북 청주시 서원대(옛 청주사범대) 화예장식학과 교수가 된 것. 4년제 대학으로는 처음으로 화예장식학과를 신설한 대학의 교수가 된 것이다.

“자신의 소명을 발견한 날, 사람은 새로 태어난다고들 한다. 학문으로서도 손색없는 화예학의 로드맵을 새로 그리는 일이 내게 주어진 일이다.”

영상음악작곡가, 매너 서비스 강사, 전통 민화 연구원장, 대학교수. 이들 4명은 모두 새로운 출발을 했다. 대학의 평생교육 과정이 그 출발의 밑거름이었다.

글=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디자인=김성훈 기자 ksh97@donga.com

■ 평생교육원-사회교육원이란?

대학에서 평생교육을 담당하는 기관은 ‘평생교육원’이나 ‘사회교육원’이라는 명칭을 주로 사용한다. 일부 대학에서는 특화된 과정에 맞춰 ‘미술디자인교육원’과 같은 독특한 명칭을 쓰기도 한다.

넓게는 동사무소에서 하는 요가강좌나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하는 요리강좌도 ‘평생교육’의 범주에 속한다. 그러나 대학의 평생교육기관에서는 이들 강좌와 차별화되는 전문적이고 학문적인 과정을 개설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학점은행제 과정이다. 고등학교 졸업 이상의 학력을 갖춘 사람들이 이들 과목을 수강하면 학사 학위를 받을 수 있는 평생교육 과정이다.

전문적인 지식을 쌓기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다양한 과정도 개설되어 있다. 카운슬러 전문가 과정, 심리치료 전문가 과정, 음악치료 입문 과정, 커피전문가 과정 등. 그 종류와 이름이 매우 많고 관련 범위도 넓다.

대학에 따라서는 다양한 과정 중 일부를 ‘자격증 과정’으로 따로 분류해 두기도 한다. 각 대학에서 자체적으로 자격증을 발급하기도 하고 ‘한국대학부설 평생교육원협의회’ 명의의 자격증을 발급하기도 한다. 한국대학부설 평생교육원협의회 명의로 발급되는 자격증은 홈페이지(www.kauce.or.kr)에 안내돼 있다. 물론 자격증을 받는다고 취업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평생교육원에서 이뤄지는 강의 중에는 해당 대학의 교수가 진행하는 과정이 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는 외부 전문가를 초청해서 진행하는 강좌가 더 많다. 교수진에 대해 미리 알고 가는 것이 좋다. 평생교육은 새로운 실무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외부 전문가들이 현장 위주의 강의를 많이 한다.

평생교육원에 개설된 강좌라도 수강 인원이 일정 수준을 넘지 않으면 폐강된다. 지인의 권유를 받고 특정 대학의 홈페이지를 뒤졌지만 해당 강좌가 없다면 폐강됐을 개연성이 높다. 비슷한 성격의 강좌가 다른 대학에는 개설되어 있을 수 있으므로 다른 대학의 관련 강좌를 찾아보면 된다.

평생교육원에서 강의를 맡은 외부 전문가는 수강생 중에 태도가 좋은 학생을 선발해 일감을 주거나 일자리를 제안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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