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질 인터뷰 대가 지불해선 안돼”

  • 입력 2007년 8월 16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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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인질 드라마로 대박을 터뜨린 탈레반의 홍보 전략.”

15일 AP통신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납치된 한국인의 석방 협상 과정을 이같이 표현했다. 인질사태를 활용해 대내외적으로 각종 정치적 이익을 이끌어내는 탈레반의 노회한 홍보술을 지적한 것.

세계 주요 언론은 내부 가이드라인을 통해 자신들의 미디어가 납치범들의 여론전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신경 쓰고 있다.

그러나 납치범들이 흘리는 메시지 역시 ‘주요 정보’의 일부인 한 ‘상세한 뉴스 따라잡기’와 ‘납치범 전략 악용 방지’ 사이에서의 올바른 균형은 이들에게도 여전한 숙제다.

▽미디어전의 성과=탈레반 측 협상대표들은 최근 한국 협상단과의 대면 접촉 직후 공개 기자회견을 열었다. 2001년 11월 정권에서 축출된 지 5년여 만에 정식으로 언론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장소도 아프간 정보국 사무실에서 불과 100m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TV를 통해 이 장면을 본 아프간의 상인 무하마드 아그하 씨는 “적신월사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한 그들의 모습은 탈레반이 힘 있는 집단이라는 것을 보여 줬다”며 “경찰이나 정보국 사람들도 놀라서 이를 지켜봤다”고 전했다.

카르자이 정부가 협상 진행을 위해 탈레반 측에 공식적인 안전 보장 및 통행 허가를 해 준 사실도 이 같은 분위기에 힘을 보탰다.

호주의 안보 컨설턴트인 안토니 무어하우스 씨는 “탈레반이 협상 대상자로서의 합법성을 인정받았다는 것 자체가 (테러리스트와 전쟁을 해 온) 미국 등에는 타격”이라고 말했다. 그는 “탈레반은 이 사건으로 자신들이 기대했던 것보다 많은 정치적 효과를 얻고 있다”며 이 같은 상황이 추가 납치사건을 부추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탈레반은 초기에 2명을 살해하는 극단적인 대응을 보인 뒤 2명의 여성 인질을 조건 없이 풀어 주는 유화책을 병행하며 세계의 관심을 끌어 모으는 데 성공했다. 국내 언론은 물론 아랍권의 알자지라 방송과 일본 NHK, 미국 CBS방송 등에 잇달아 인질들의 육성 인터뷰와 동영상을 전달하며 심리적 압박 효과도 극대화했다.

▽주요 매체 엄격한 제작 지침=탈레반이 미디어전에서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이를 경계하는 목소리도 한층 높아졌다.

AP통신은 15일 자사가 ‘인질에게 접근하는 대가를 납치범에게 지불해서는 안 된다’는 내부 지침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이 통신은 기자들에게 ‘납치범의 도구로 활용되거나 인질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보도활동을 자제하라’고 지시했다.

BBC방송도 제작지침서에 ‘납치범에게 결과적으로 여론 접촉의 통로를 열어줄 수 있는 취재의 경우 윤리적인 이슈들을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납치범과의 인터뷰나 이들이 제공하는 동영상 및 녹음테이프도 방송할 수 없다.

해외 20개국에 지부를 두고 있는 로스앤젤레스타임스도 마찬가지. 로스앤젤레스타임스 측은 “인질과의 인터뷰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며 “한국인 피랍사건과 관련해 제안이 들어 왔어도 거절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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