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교환’ 고집 꺾을 묘수 찾기에 달려

  • 입력 2007년 8월 15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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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 석방 도와주세요”아프가니스탄 피랍자 가족모임 대표들이 14일 서울 여의도 주한 인도네시아 대사관을 찾아 자촙 토빙 대사(왼쪽)에게 인질 사태 해결에 협조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토빙 대사는 “두 여성이 안전하게 풀려나 매우 다행”이라며 “남은 19명도 하루빨리 안전하게 풀려날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는 국민 대다수가 이슬람 신자다. 연합뉴스
“전원 석방 도와주세요”
아프가니스탄 피랍자 가족모임 대표들이 14일 서울 여의도 주한 인도네시아 대사관을 찾아 자촙 토빙 대사(왼쪽)에게 인질 사태 해결에 협조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토빙 대사는 “두 여성이 안전하게 풀려나 매우 다행”이라며 “남은 19명도 하루빨리 안전하게 풀려날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는 국민 대다수가 이슬람 신자다. 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무장세력이 13일 여성 2명을 석방했지만 남은 19명의 석방 협상 결과는 여전히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상황이다.

앞으로 협상의 관건은 탈레반 측의 ‘인질-수감자 맞교환’ 요구에 한국 정부가 어떤 해법을 내놓을지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한국 정부는 일단 인질 2명의 석방이 다른 인질들의 석방과는 별개의 문제라며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탈레반의 2명 석방, ‘조건 없는 선의’일까=탈레반 측과 한국, 아프간 정부는 한결같이 여성 인질 2명 석방 과정에서 “뒷거래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탈레반 측 대변인 카리 유수프 아마디는 “인질 석방은 한국과의 원만한 대화를 위한 선의의 표시”라고 밝혔다. 아프간 가즈니 주의 마라주딘 파탄 주지사도 AFP통신에 인질 석방의 대가는 없었다며 “앞으로도 몸값 지급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이면에서 모종의 거래가 이뤄졌을 개연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탈레반은 올해 4월 프랑스 여성 구호요원을 풀어줄 때도 ‘선의의 표시’라고 말했으나 외신들은 몸값이 오갔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한국 정부가 탈레반 측의 핵심 요구 사항인 ‘인질-탈레반 수감자 맞교환’에 권한이 없는데도 탈레반 측이 대면협상 추진에서 실제 대면까지 줄곧 “협상 과정이 만족스럽다”고 말해온 점도 이 같은 추측을 뒷받침한다.

▽한국 정부, 고심 속 해법 찾기=여성 2명 석방 과정에 어떤 형태로든 석방 대가가 건네졌다면 남은 인질들의 석방에도 비슷한 방법이 적용될 수 있다. 그러나 탈레반이 동료 수감자의 석방을 계속 고집할 경우엔 협상에 난항이 예상된다.

수감자 석방의 열쇠를 쥔 아프간 정부의 협조를 받아내는 동시에 탈레반 측의 요구조건을 완화해 나름의 타협점을 찾아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결국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 측에 양보한 만큼의 보상 방안을 제시하는 수밖에 없다.

아프간 정부에는 형기가 얼마 남지 않았거나 아픈 수감자를 사면 또는 병보석의 형식으로 풀어주거나 탈레반에 협조한 경범 여성 수감자를 석방하는 방안을 제시할 수 있다. 이는 아프간 정부가 ‘감내할 수 있는 부담’이 될 수 있다. 대신 한국 정부는 아프간에 경제 원조를 약속할 수 있다.

탈레반 측에는 대면 접촉과 전화 통화를 통해 신뢰 구축에 힘쓰는 한편 특정 수감자에 대한 석방 요구를 철회하도록 유도할 것으로 보인다. 경우에 따라서는 탈레반이 장악한 지역에 병원이나 학교 등을 지어주는 방안을 제안할 수도 있다.

▽탈레반의 향후 전략은 뭘까=탈레반도 스스로 이슬람 정치 단체를 표방하는 만큼 아무런 명분이나 실익도 없이 쉽게 인질사태를 끝내기는 어렵다. 이는 패배를 자인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탈레반이 적절한 명분을 내세워 여성 인질들을 우선 석방한 뒤 남성 인질들을 계속 억류하면서 장기전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탈레반의 존재를 세계에 과시할 수 있고 자신들을 무시하는 아프간 정부와 미국도 압박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탈레반도 미국과 아프간이 정상회담을 통해 전면 거부한 수감자 석방 요구가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탈레반은 명분의 강도를 조절하면서 실익을 챙기는 전략을 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마디 대변인은 14일 AP통신에 협상 대표 2명이 지도부로부터 석방 요구 수감자의 명단을 바꾸거나 줄일 권한을 부여받았다고 밝혔다.

▽긍정적인 전망도=여성들을 무한정 억류하는 것은 탈레반에도 적지 않은 부담이 되기 때문에 한국 정부와의 협상을 계속 유지하며 가급적 빠른 해법을 모색할 것이라는 관측도 없지 않다.

외신들이 대체로 비관과 낙관이 엇갈리는 전망을 내놓는 가운데 남은 인질들이 며칠 안에 석방될 수 있다는 전망이 일각에서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탈레반 전문가인 아마드 바라카트 알자지라 파키스탄 주재 특파원은 14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남은 인질들의 석방이 며칠 안에 전격 해결될 가능성이 있으며 쉽지는 않겠지만 불가능하지도 않다”고 말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5분 이상 흐느끼다 탈레반서 벗어났다는 말에 그쳐”▼

“한국인 여성 2명은 나를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린 뒤 5분 정도나 계속 서럽게 흐느꼈습니다. 차에 타고서도 1분 정도는 흐느낌을 그치지 못했어요. ‘이제는 탈레반에서 자유로워졌다’고 영어로 말을 건네자 그때서야 울음을 멈췄습니다.”

13일 풀려난 김지나, 김경자 씨를 탈레반으로부터 넘겨받아 아프가니스탄 적신월사 측에 인계한 하지 자히르(32·사진) 씨는 당시 상황을 이같이 설명했다.

가즈니 주 콘다르 마을의 부족 유력 인사인 자히르 씨는 14일 연합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13일 아침 탈레반이 집에 찾아와 ‘아르조까지 차를 준비해 달라’며 적신월사 측과 만날 장소와 시간을 알려줬다”고 석방 과정의 첫 순간을 전했다.

자히르 씨는 선대부터 탈레반 세력과 신뢰관계를 쌓아 왔고 아프간 정부와의 사이에서도 중립을 지켜 온 인물. 이 때문에 이번 피랍 사건 초기부터 탈레반 접촉 및 협상 등에서 일정한 역할을 해 왔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풀려난 두 사람은 차량 뒷좌석에 올라탄 뒤에도 눈물을 그치지 않았다. “당신들은 더는 탈레반과 함께 있지 않다. 이제 가족을 볼 수 있다”고 그가 위로를 건넨 뒤에야 이들의 훌쩍임은 멈췄다.

자히르 씨는 앞좌석 거울로 이들의 상태를 간간이 살피며 1시간 반가량 자신의 도요타 코롤라 차를 운전했다. 두 여성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가끔 웃음을 짓기도 했지만 다시 순간적으로 눈물을 흘리는 등 복잡한 감정상태를 보였다고 한다.

운송 과정에서 문제가 일어나지는 않았다. 그에게 여성들을 넘긴 탈레반 지역 사령관은 다른 사령관에게 위성전화로 차종과 색깔, 운행목적 등을 설명하며 “공격하거나 납치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자히르 씨는 설명했다.

자히르 씨의 입을 통해 석방 당시 상황이 일부 공개되기는 했지만 당사자인 두 김 씨로부터 직접 자세한 설명을 듣는 것은 당분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신병을 넘겨받은 한국 정부가 이들의 언론 접촉을 최대한 차단할 방침이기 때문.

이들이 내놓게 될 생생한 증언은 향후 협상 전략을 마련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피랍 상황 △인질들의 분산 및 이동 과정 △남은 인질들의 상태 △동료 2명의 피살 경위 △탈레반 측의 납치 목적 등은 정부가 지금까지 파악한 정보의 빈틈을 메워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이런 내용이 걸러지지 않은 채 섣불리 외부에 공개됐다가는 탈레반을 되레 자극하거나 향후 협상에서 오히려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정부의 고민이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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