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은 “경제 협력의 단계를 한 단계 더 끌어올리고, 남북 간 소위 경제공동체의 기반을 조성해 나가는 것, 장기적으로 경제공동체를 형성해 나가는 것이 한반도 평화에 가장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이를 위하여 노력해 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10일 ‘청와대브리핑’과도 일맥상통한다. 청와대브리핑은 “남북 경제 협력은 안보와 평화를 위한 장기적 투자”라며 “남북 간의 경제적 상호 의존 관계가 발전하면 안보와 평화 문제의 해결 속도도 훨씬 빨라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도 14일 “북핵은 6자회담의 틀 내에서 최종적으로 해결되어지는 것이고, 경협은 남북 간에 진척시켜 나갈 수 있는 문제”라며 “6자회담은 고유의 해결과제와 목적이 있고, 정상회담은 6자회담과 별개의 역할이 있다. 두 개가 충돌하지 않으면서 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북핵 문제는 미국을 포함한 6자회담이라는 다자 논의 틀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남북 정상회담으로는 그 성과 도출에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범여권 대선주자인 이해찬 전 국무총리도 이날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남북 정상이 북핵 문제에 대해 의견 교환을 할 수는 있겠지만 6자회담에서 북핵 문제를 잘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북핵 문제가 (정상회담) 의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부 일각에선 이 같은 정부와 범여권의 주장이 정상회담에서 북핵 논의가 가시적 성과 없이 끝날 경우 거세질 비난 여론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노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한나라당이 남북 정상회담의 정치적 이용 가능성을 제기하는 데 대해서 강한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마무리 발언에서 “남북 회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도 않겠지만 정치권이 흔든다고 해서 해야 할 일을 안 하지도 않을 것”이라며 “일부에서 남북 정상회담 절차, 과정, 의전 문제를 가지고 마치 우리가 북한에 끌려 다니거나 비위를 맞추는 듯 흠집 내기를 계속하고 있다. 상대방이 원할 만한 것은 의논도 말라며 딱 잘라 버리면 결국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된다”고 불쾌해했다.
▽“북핵 문제, 반드시 합의하라”=한나라당 남북 정상회담 태스크포스(TF)는 이날 회의를 열고 남북이 합의해야 할 사안으로 △북핵 폐기 확약 △분단 고통 해소 △군사적 신뢰 구축을, 논의 불가 의제로는 △국민 합의 없는 통일 방안 △북방한계선(NLL) 재획정 △국민 부담 가중하는 대북 지원을 선정했다.
이주영 정책위의장은 브리핑에서 “오늘 개성에서 정상회담 준비 접촉이 있는데 정부는 반드시 ‘3가3불’의 내용을 명심하고 성과를 내도록 하라”며 “노무현 정부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그리고 분단 고통의 극복을 위한 책임 있는 결과가 있도록 노력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나경원 대변인도 논평에서 “정부가 어떻게든 정상회담을 하기 위해 준비 단계부터 북한에 질질 끌려가고 있다”며 “해상 휴전선인 NLL만큼은 양보란 있을 수 없고 정상회담 의제로도 절대 채택돼선 안 된다. 국가안보만은 절대 팔아먹지 말라”고 촉구했다.
나 대변인은 이어 군이 을지포커스렌즈(UFL) 연습 기간에 실시하기로 했던 단독 기동훈련을 연기하기로 한 데 대해 “북한 눈치를 보느라 군사훈련도 마음대로 못하느냐. 적어도 국가안보와 관련된 사안은 북한의 눈치를 봐서는 안 되고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노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의 정치적 이용 가능성을 제기하는 한나라당을 비난한 데 대해서도 “노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과 관련한 문제 제기를 ‘흠집 내기’라고 규정했으나 이런 문제점은 국민 모두가 공감하는 내용”이라며 “임기 내내 오기와 독선으로 일관한 것도 모자라 남북 정상회담까지 오기를 부린다면 역사의 죄인이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하태원 기자 triplets@donga.com
■ 한반도평화연구원 학술회의
북핵 문제 전문가들은 북한의 핵 포기 결단을 이끌어 낼 수 있는지가 7년 만에 성사된 제2차 남북 정상회담의 성패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북핵 문제가 해결의 가닥을 잡은 뒤 북핵 폐기에 도움이 된다는 확신이 있을 때’ 정상회담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던 정부가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정작 정상회담이 열리게 되자 정부가 북핵 문제의 의제화를 꺼리는 것은 원칙을 저버린 행동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현 정부가 추진해 온 이른바 ‘평화번영정책’도 북한 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한다는 것을 전제로 남북의 실질적 협력과 군사적 신뢰 구축 실현이 목표라고 밝히고 있다.
서울대 국제대학원 신성호 교수는 14일 서울 중구 명동 은행회관 국제회의실에서 열린 한반도평화연구원(원장 윤영관 전 외교통상부 장관) 주최 학술회의에서 “남북 정상회담의 성공 기준은 북한이 영변 핵시설 신고와 폐기의 구체적인 의사와 결단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 교수는 ‘2차 남북 정상회담의 의미, 쟁점, 성공을 위한 조건들’을 주제로 열린 회의에서 “북한이 핵 문제를 깨끗이 해결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6자회담과 남북관계, 북-미 및 한미관계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북핵 논의를 외면한다면 회담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말한 뒤 “북한이 핵 폐기에 대한 태도를 모호하게 한 채 남북 경제교류나 평화체제에 관한 선언을 내놓는다면 향후 회담의 성과를 놓고 심각한 남남갈등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 정부의 대북 정책과 비슷한 견해를 보여 온 ‘진보학자’로 분류되는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가장 우선적인 의제가 북핵 문제가 될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며 “북한의 핵 포기 의지와 9·19공동성명 및 2·13합의 이행 의지를 명확히 받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국책연구기관인 외교안보연구원의 최강 교수도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핵 문제를 포함한 전반적인 군사안보 문제를 직접 거론하고 강조해 평화와 안보는 미국과 논의한다는 (북한의) 구도를 타파해 군사안보 문제에서의 당사자적 지위를 공고히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하태원 기자 triplets@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