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윤희각]가족들 추락 바라본 할아버지의 분노

  • 동아일보
  • 입력 2007년 8월 15일 02시 58분


부산 놀이공원 추락사고에서 살아남은 전운성(70) 할아버지는 반백 년 가까이 살아온 아내와 손자 손녀 며느리 등 5명이 떨어져 숨지는 참사를 속수무책으로 바라봐야만 했다.

눈 아래 25m 떨어진 곳에 가족의 주검이 흩어져 있는 참담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몸에 매달려 떨고 있는 8세의 손녀를 살리려는 필사의 노력뿐이었다.

구조대가 도착할 때까지 할아버지는 관람기의 손잡이를 붙잡고 공중에서 무려 30분가량 안간힘을 다해 매달려 있었다.

의료진은 “20대 젊은이도 5분 이상 버티기 힘든데 70대 할아버지가 견뎠다는 것은 가족애가 낳은 기적”이라고 전했다.

할아버지는 병원으로 옮겨진 뒤 가족을 한꺼번에 잃은 충격으로 한동안 말을 잃었다. 밤늦게 할아버지와 유가족이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을 불렀다. “놀이기구에 안전시설이 없다는 게 말이 됩니까? 안전할 것 같던 놀이기구에서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난 것은 분명한 인재(人災)입니다”라며 참았던 눈물을 쏟아 냈다.

조사 결과가 나와 봐야겠지만 사고 원인은 기계 결함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지적대로 놀이기구의 안전시설 결함이 더 문제라는 말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놀이공원의 주변 조망을 보기 위해 타는 대관람차(자이언트 휠)는 공원 내에서 비교적 안전한 시설로 꼽힌다. 사고 놀이기구는 한 바퀴를 도는 데 2분 가까이 걸리는 느린 속도 때문에 제작사나 주최 측에서 특별한 안전시설을 설치하지 않았다.

강화유리로 만들었다는 8인승 관람기의 특수 유리창은 7명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사망자 5명과 함께 그대로 떨어져 나갔다. 진짜 강화유리인지 의심이 갈 정도다.

설사 유리가 떨어져 나갔더라도 관람석 상하좌우를 받쳐 줄 철제 안전봉이나 안전벨트만 설치돼 있었더라도 할아버지 일가족의 참사는 막을 수 있었다고 한다.

2003년 4월 이후 발생한 전국 놀이시설의 안전사고만 20건에 이른다. 기계 결함에 의한 것보다는 놀이공원이나 이용객의 안전의식 결여로 비롯된 것이 더 많기는 하다.

그러나 어이없는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반복되는 ‘안전 불감증이 부른 인재’라는 말을 언제까지 되풀이해야 하나.―부산에서

윤희각 사회부 to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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