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전주성]도덕성과 능력 중에서 고르라면

  • 입력 2007년 8월 15일 02시 58분


코멘트
부잣집 곳간지기를 뽑을 때 미련하지만 깨끗한 사람과 똑똑하지만 부패한 사람 중에 누가 나을까. 당연히 깨끗한 사람이 나을 것이다. 지키는 것이 목적이니까. 그러나 나라의 지도자를 뽑을 때는 대답이 쉽지 않다. 왜냐하면 새로운 부(富)를 만드는 일도 맡겨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유능하면서도 도덕적이면 제일 좋겠지만 현실은 두 덕목 간의 융합에 매우 인색하다. 역사적으로 볼 때 처음에는 능력 있고 인기 있었지만 차차 부패에 물들어 간 지도자가 적지 않다. 반면 무능한 인물은 설사 깨끗하다 하더라도 어차피 권좌에 오래 머물기 힘들다.

현재 진행 중인 대선 경쟁은 이 문제에 대한 우리의 고민을 집약하고 있다. 특히 여론조사 선두주자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문제의 한가운데 서 있다. 유능하지만 부패에서는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 게 그에 대한 다수 여론이다. 현대건설의 비약과 청계천 복원이라는 기억하기 쉬운 증거가 있는 반면, 고도 성장기에 재벌 사장을 지낸 사람이 어찌 법대로만 살았겠느냐는 의심이 따라다닌다.

실제로 지금까지의 대선 국면을 보면 ‘이명박의 능력’과 ‘이명박의 부패’ 간의 다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치 다른 모든 후보는 이 시장보다 깨끗하지만 덜 유능하다는 식의 암시가 대중의 뇌리에 자리 잡는 듯하다.

한나라 경선서 드러난 고민

문제는 이런 단순논리에 따르는 왜곡과 과장이다. 예컨대 기업인 출신이므로 경제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얘기는 올바른 인과(因果) 추론이 아니다. 대통령 자질로서의 능력은 기업인의 그것과 다르다. 이윤 추구라는 한 가지 목적을 향해 미시적으로 회사를 경영하는 것과 다양한 가치의 조화를 추구해야 하는 거시적 국정 운영은 차원이 다르다. 학자, 관료, 언론인, 시민운동가 등 다른 경력들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다.

부패에 관한 평가 역시 공정해야 한다. 부패는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지만 시장제도가 부족한 경우 규제나 적절한 암거래가 오히려 자원 배분의 효율을 높이는 경우도 있다. 필리핀 추락의 ‘원인’이 된 마르코스의 축재와는 달리 과거 우리나라의 정경유착은 재벌 중심 성장전략의 ‘증상’인 측면이 강하다. 당시의 부패는 일정 부분 개인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영역이었기 때문에 재벌회사 사장쯤 되는 위치면 어차피 완벽하게 깨끗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 전 시장이 “대통령이 못 될 정도로 잘못한 것 없다”라는 표현을 쓴 것도 바로 이런 불가피성에 대한 하소연이라 해석할 수 있다. 물론 그에게 시대적 정상 궤도에서 벗어나는 개인 비리가 있었는지는 더 두고 볼 일이다.

그런데 더 중요한 문제는 과거의 해석이 아니라 미래의 전망이다. 경제 규모가 커지면 규제와 부패가 초래하는 비효율이 급증한다. 결국 필요한 시장제도를 정비하고 가능하면 가격기능에 자원 배분을 맡겨 두는 시장경제의 기본 원칙을 따라가야 한다. 나아가 고령화, 개방화, 정보화와 함께 경쟁과 불확실성이 늘어나는 새로운 환경에 걸맞은 민생 비전이 필요하다. 한마디로 과거의 경험에서 미래의 처방을 구하기 힘든 측면이 많다.

요컨대 나라의 곳간지기는 몸가짐도 중요하지만 국부를 일으킬 실력이 있어야 한다. 도덕성 논란에 묻혀 능력 검증을 소홀히 할 수 없다. 같은 부패라도 시대적 현상인지, 개인의 성향인지 구분해야 한다. 같은 능력이라도 미래의 정책 수요에 부합하는지 따져야 한다. 후보들의 자질과 능력 검증에 균형과 초점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대통령을 잘못 뽑아 나라 장래가 흔들리고, 내 살림이 핍박해지는 꼴을 보고 싶지 않은 것이 대다수 국민의 마음이다. 그래서 같은 네거티브라도 인신공격보다는 능력 공방을 보고 싶은 것이다.

민생 직결된 정책대결 기대

그러나 지금과 같은 욕지거리 수준의 대선 논쟁이 지속되면 유권자들은 판단 기준이 헷갈리게 되고 그 결과 최선의 선택을 놓칠 수 있다. 반면에 민생과 직결된 정책 논쟁이 이루어지면 국민 개개인이 유능한 심판이 될 것이다.

취업을 걱정하는 우리 큰아이, 입시에 주눅 든 우리 둘째, 노후가 슬슬 걱정되는 우리 부부는 얼뜨기 같은 선거 구호나 몇 % 성장, 몇십만 개 일자리 같은 뜬구름 공약에 별 관심이 없다. 아마 많은 다른 집도 마찬가지일 거다. 정책 대결이 거의 실종된 선거지만 역설적으로 민생의 정곡을 찌르는 정책의 힘이 가장 돋보일 수 있는 선거이기도 하다.

전주성 객원논설위원·이화여대 교수·경제학 jjun@ewha.ac.kr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