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중현]‘똑같이’의 환상

  • 입력 2007년 8월 14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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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루탄 냄새가 가실 날이 없던 1980년대 중반의 대학 캠퍼스.

그 시절 ‘보통 신입생’들은 스터디 클럽이나 학회에 가입해 선배들 밑에서 낯선 용어의 운동권 서적을 공부했다. 마르크스의 노동가치설은 기초 커리큘럼 중 하나였다.

“노동은 신성하다”는 선배의 가르침에 신입생들은 전적으로 공감했다. 하지만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 선후배 간에 설전이 벌어지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이었지만 당시 선배들은 “노동의 질(質)과 관계없이 양(量)에 따라 임금이 정해져야 한다”는 방식으로 노동가치설을 설명했다.

이에 대해 농촌에서 유학 온 몇몇 신입생은 “그렇다면 시골에서 농사나 짓지, 아버지 ‘소 판 돈’으로 서울 와서 공부할 이유가 뭐냐”며 이의를 제기했다.

그럴 때 선배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뜨거운 가슴을 갖고 생각해 봐라.”

20여 년이 지나 40대가 된 이들 중 노동가치설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한국의 노동계에서는 여전히 치기 어린 노동가치설의 잔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문제로 노조의 매장 점거와 경찰의 강제 해산 등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이랜드그룹 유통 계열사.

이 회사 노조와 민주노총은 정규직으로 전환될 비정규직을 정규직과 ‘똑같이’ 대우해 달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규직이 될 캐시어(현금 수납원)는 기존 정규직과 하는 일이 다르다.

또 지난달 정부와 교섭에 나선 공무원 노조는 고과에 따라 차등 지급되는 ‘성과급제’를 폐지하라고 요구했다. 실제 일부 지방자치단체 노조는 차등 지급된 성과급을 모아 ‘n분의 1’로 나눠 임금 수준을 똑같이 맞춘다.

이에 비해 미국을 포함한 서구 선진국에서는 부가가치를 많이 내는 일을 맡은 사람, 같은 자리라면 더 높은 성과를 낸 직원에게 더 많은 임금을 지불한다. 또 이런 추세는 시간이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

덜 받는 근로자도 ‘똑같이 달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맡은 일의 ‘시장 가격’과 업무 성과에 따라 임금을 정하는 관행이 정착돼 있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에서 기업 내에 임금 차가 생긴 것은 오래된 일이 아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연공에 따라 중견 사무직원과 단순 기능직을 맡은 사람이 같은 월급을 받는 회사가 적지 않았다. 기업 중 상당수가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자 이런 비효율적인 관행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

시대는 변했다. 낮은 임금을 무기로 삼는 중국 등 후발국 기업과 경쟁하면서 한국 기업들이 ‘인심’을 쓰기가 어렵게 됐다. 최근 노동계가 아무리 ‘똑같이’를 외쳐도 기업들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장경제 체제가 성숙해 가면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근로자가 더 많은 임금을 받는 방법은 하나로 압축된다. 자신의 능력을 키워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다.

이 때문에 노조는 회사에 ‘똑같이 달라’가 아니라 역량을 키울 기회를 달라고 요구하는 게 마땅하다. 이래야 근로자는 자기를 계발해 더 많은 임금을 받고, 기업은 계속 이익을 내 노사가 함께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할 수 있다.

뜨거운 가슴만 강조해 온 한국 노동계도 이제 ‘차가운 머리’로 변화를 받아들일 때가 됐다.

박중현 사회부 차장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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