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낙인의 법과 사회]광복의 완성 통일, 긴 호흡으로

  • 입력 2007년 8월 14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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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 다시 만져 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내일은 제62주년 광복절이다. 광복 이전에 한반도에서 펼쳐진 혼돈의 세월은 우리에게 새삼 어제의 역사적 교훈을 통해 오늘을 되돌아보고 내일을 설계할 소여(所與)를 제공한다.

우리에게 광복 이전의 100년은 어쩌면 잊고 싶은 한 세기인지도 모른다. 19세기 후반에 서구 열강은 제국주의적 세계 경영에 나섰다. 아직도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동양 각국은 이들에게 더없이 좋은 먹잇감이었다.

아편전쟁 이후의 청나라를 비롯해서 인도차이나 각국은 차례로 이들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500년 조선왕조도 위정척사(衛正斥邪)론의 깃발 아래 전개된 쇄국론과 설익은 개화(開化)세력 사이의 갈등 속에서 종말에 이르고 있었다.

하지만 일본은 메이지(明治)유신을 단행하여 서세동점(西勢東漸)의 굴욕적인 상황을 개혁과 개방을 향한 능동적 의지로 변환한 바 있다. 그들의 탐욕은 국내에 그치지 않고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의 건설로 나아갔다. 바로 그 과정에서 조선은 식민지 수탈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광복은 한반도에 새로운 희망과 광영만을 부여하여야 마땅하다. 흩어진 가족, 찢어진 민족이 새로운 국가공동체를 건설하는 환희의 장이어야 했다. 하지만 자력이 아닌 타력으로 이룬 광복은 결국 미소 양대 세력에 의한 남북 분단의 비극을 안겨 주었다.

1948년 남쪽에는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한 대한민국이 수립됐고, 북쪽에는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에 기초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자리 잡았다. 허리가 찢어진 두 개의 공화국은 각기 자신만의 정통성을 주장하는 가운데 결국 민족상잔의 6·25전쟁으로 내닫고 말았다.

기나긴 갈등의 세월을 뛰어넘어 2000년 6월 15일에 이어 2007년 8월 28일 두 번째 남북 정상회담으로 온 나라가 들떠 있다. 통일을 향한 잰걸음에 이의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민족의 대의가 결코 특정 정당이나 특정 정치인의 전유물일 수는 없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긴 하지만 그 자체에 완결적 의미를 부여해서는 안 된다. 무조건적인 통일일 수는 없다. 통일이 세계사의 수레바퀴를 거스를 수는 없다.

온 민족이 인간으로서의 자유와 권리를 누리는 가운데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들만의 정의(正義)가 아니라 민족이 호응하는 정의여야 한다. 글로벌 사회에서 시장경제를 통하여 개혁과 개방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여야 한다.

차제에 어설픈 통일지상주의자들은 분명한 태도를 밝혀야 한다. 신성한 통일 명제에 숨어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려는 음모는 차단되어야 한다. 갑년이 넘도록 서로 다른 체제에서 살아온 민족적 이질성은 민족 화해의 차원에서 포섭해야 한다. 하지만 그 화해는 적어도 방어적 관용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는 없다.

최근 우리 사회 내부에서 대한민국 4대 국경일에 대한 재평가 논란이 일고 있다. 민족자존을 일깨워 마침내 대한민국임시정부 건설의 계기를 마련한 3·1절, 국법의 초석인 헌법을 제정한 제헌절, 나라를 되찾은 광복절, 민족의 시원을 알리는 개천절은 무슨 날이 아니라 절(節)로 격상되어 있다.

그런데 헌법을 조롱하고 국조(國祖)를 부정하는 그릇된 행태에 편승하여 제헌절과 개천절을 깎아내리려는 기도가 엿보인다. 건국과 함께해 온 국경일이 어느 특정 세력에 의한 일회적 유희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분단의 속앓이로 인한 미완의 광복은 이제 조국 통일의 온전한 광복으로 승화되어야 한다. 결과 못지않게 과정을 존중하면서 통일의 염원을 긴 호흡으로 맞이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성낙인 서울대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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