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부 죄수석방 영향력 한계 인식-여론 나빠지자 협상선회

  • 입력 2007년 8월 11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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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무장세력에 납치된 한국 인질들의 석방을 위한 탈레반과 한국 정부 대표단과의 첫 대면협상이 10일 이루어졌다. 이번 협상이 어떤 실질적 결과를 이끌어낼지는 아직 미지수다. 하지만 그동안 장소 문제로 진척되지 못했던 협상이 열림에 따라 대화를 통한 사태 해결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그동안 여러 차례 인질 추가 살해 협박을 해온 탈레반이 왜 협상에 나섰는지 그 배경을 살펴본다.

○탈레반의 ‘현실 인정’

먼저 탈레반이 ‘동료 죄수와 인질’ 맞교환이라는 기존의 요구에서 한 발 물러나 협상 전략을 바꿨을 수 있다. 즉, 한국 대표단이 탈레반 죄수 석방에 대해 별다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는 현실적인 제약을 인정하고 한국 정부가 수용할 수 있는 조건을 놓고 협상을 벌이기로 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알자지라 방송이 이번 협상에서 인질들의 몸값이 논의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한 것은 이런 관측을 뒷받침한다. 이 방송은 아프간 정부 고위 관료의 말을 인용해 “탈레반이 당초 인질 1명당 100만 달러의 몸값을 요구했으나 지금은 몸값 요구 수준을 낮춘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또 탈레반 협상 대표단의 안전보장 문제가 해결된 것도 협상의 걸림돌을 없앤 요인이다.

아프간 정부는 이번에 서면으로 탈레반 측의 안전을 보장했다. 탈레반은 당초 유엔의 안전보장 등 선전 효과를 노린 주장을 했으나 이 같은 요구를 접으면서 협상 장소에 대해 접점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9일부터 카불에서 열리고 있는 ‘평화 지르가’ 행사에서 일부 대표가 한국인 피랍자 석방을 촉구하는 움직임이 나오는 등 국제사회와 현지 여론이 탈레반에 부정적으로 돌아선 것도 탈레반을 압박했을 수 있다.

지르가에 참석한 부족 원로들은 “탈레반이 속한 파슈툰족은 여성을 인질로 잡은 적이 없다”며 인질들의 석방을 촉구하고 나섰다.

○협상 자리에 앉기까지

한국 정부의 협상 움직임이 본격화된 것은 탈레반이 아프간 정부와의 협상에 아무런 진전이 없다고 판단해 인질 중 배형규 목사와 심성민 씨를 살해한 뒤였다.

하지만 협상을 준비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탈레반은 당초 미군과 아프간 정부가 탈레반 죄수 8명을 풀어주어야 같은 수의 인질을 석방하겠다는 단계별 접근론을 내세웠다.

문제는 탈레반 죄수 석방 문제가 아프간의 내정에 해당하는 문제여서 한국 정부로서는 아무런 재량권이 없었다는 것. 탈레반은 초기에는 한국 정부가 아프간 정부를 압박해 탈레반 죄수 석방에 힘을 써 줄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이 5, 6일 정상회담에서 ‘납치범과 협상 불가’라는 태도를 분명히 하자 이런 요구를 접은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도 4일부터 시작된 탈레반과의 전화접촉 과정에서 한국 정부는 탈레반 죄수 석방에는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한국 정부와 탈레반은 협상 장소 선정 문제로 약 1주일간 신경전을 벌였다. 9일엔 세 차례의 만남을 추진했다가 실패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탈레반도 이번 사태의 장기화에 부담을 느끼게 돼 결국 현실적인 조건을 놓고 한국 정부와 협상을 벌이게 된 것으로 분석된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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