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19년 바이마르 헌법 제정

  • 입력 2007년 8월 11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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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공화국이며 국가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20세기 현대 헌법의 전범(典範)으로 평가받는 독일 바이마르 헌법 제1조다.

제1차 세계대전 패전 후 탄생한 바이마르공화국은 독일 역사상 최초의 의회 민주주의 정치 체제였고 바이마르 헌법은 이를 지탱한 법적 구조물이었다.

1919년 1월 제헌 의회 선거에서 선출된 국민의회는 베를린의 정치적 혼란을 피해 괴테와 실러가 우정을 나눴던 문화 도시 바이마르에서 회의를 열고 새로운 헌법 제정에 착수했다.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초대 대통령이 새 공화국의 헌법을 공포한 날짜가 88년 전 오늘인 1919년 8월 11일이다.

법률가이자 좌파 정치인이었던 후고 프로이스가 헌법 제정을 주도했고 사회학자 막스 베버도 참여했다. 프로이스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은 훗날 나치가 헌법의 정당성을 공격하는 주요 구실이 됐다.

국민 주권을 기초로 하는 바이마르 헌법은 △기본권으로서 언론 집회 신앙 양심의 자유를 인정하고 △사회권으로 의무교육과 사회보장제 노동력의 보호 등을 규정했으며 △직접선거로 선출되는 대통령에게 황제에 버금가는 강력한 권한을 부여했다.

그러나 ‘가장 자유롭고 민주적인 헌법’으로 평가받은 바이마르 헌법은 법전의 책갈피를 벗어나 패전으로 병든 경제와 좌우 계급투쟁이라는 시대적 불운 속에 내던져지면서 치명적인 결함들을 드러냈다.

사표(死票) 방지를 위해 비례대표제를 도입했으나 이 결과 정당이 난립하고 단독으로 안정 의석을 차지하는 여당이 나오지 않으면서 정국은 혼란에 빠졌다. 14년의 공화국 역사상 총리가 14번이나 바뀌었고, 정당의 수는 한때 40개에 이르렀다.

무엇보다 뼈아픈 점은 이 헌법이 나치의 집권을 방치했다는 사실이다. 1932년 나치당은 제1당의 위치에 올랐다. 당수 히틀러는 다수의 지지만 있으면 누구나 집권 가능한 민주주의의 형식 논리를 이용해 1933년 총리에 임명됐고 1934년 파울 폰 힌덴부르크 대통령이 죽자 대통령까지 겸임하는 독재자가 됐다. ‘민주주의가 그 스스로 인정한 절차에 의해 붕괴된 셈이다.’ (장영수 고려대 법대 교수)

바이마르공화국의 법무장관을 지낸 구스타프 라드브루흐는 “나치의 자유까지 방임한 것은 바이마르공화국의 죄”라고 통탄했다. 민주주의의 적으로부터 민주주의를 보호한다는 ‘방어(防禦)적 민주주의’ 개념은 이 같은 전체주의 나치의 경험에 따라 태어났다.

독일 시인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말했다.

“국민으로부터 나온 권력은 대체 어디로 가는가.”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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