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주성하]北에 충격 줄 드라마 ‘사육신’

  • 입력 2007년 8월 11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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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남북한 합작 TV 드라마 ‘사육신’이 아직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지는 않는 모양이다. 남북 정상회담 소식이 발표된 9일에도 시청률은 4.7%에 그쳤다. “수십 년 전 사극 같다” “역사 다큐물 재연 같다”는 혹평도 나온다. 다양한 사극을 본 시청자들의 안목이 높아진 것이 이유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사육신’이 앞으로 방영될 북한에선 사정이 다르다. ‘사육신’은 북한이 처음으로 만든 TV용 사극이다. 북한에는 역사물 영화도 10여 편에 불과한 실정이다.

우선 ‘사육신’은 소재부터 북한엔 파격적이다. 늘 비겁하고 무능하게 묘사됐던 왕가가 처음으로 인간적으로 그려지고, 예술의 생명으로 간주되는 ‘정치사상성’이 완전히 배제됐다. 또 24부작은 방대한 분량이다. 북한에서 20부를 넘는 드라마란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북한에 부담스러울 부분은 주민들이 왕가의 모습에서 현실 정치를 볼 것이라는 점이다. 1970년대 초반 북한에서 ‘안중근 이등박문 쏘다’라는 영화가 나왔지만 10년쯤 뒤 TV 방영이 중단됐다. 누군가 안중근 열사를 모방(요인 저격)할까 두려워서였다. 그만큼 소재에 민감했던 북한에서 후계를 둘러싼 궁중 암투가 드라마로 방영되는 것이다.

‘사육신’에 등장하는 궁중 의상과 예법 등도 북한 주민들에게는 생소하다. 하지만 이는 북한 주민들에게 ‘교과서’ 구실을 해 남북 간 이질감을 줄이는 데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사육신’은 북한에 미(美)에 대해서도 새 인식을 심어 줄 것 같다. 북한 주민들이 선호하는 미인은 얼굴이 둥글고 복스러운 형이다. 물론 한국 영화 팬인 김정일 국방위원장만큼은 얼굴이 작고 계란형인 여성을 좋아한다. 그렇지만 전통적 기준의 ‘북한 미인형’에서 거리가 있는 연기자 조명애가 남측의 선택에 따라 출연한 사실이 알려지면 미의 기준에도 새 바람이 불 것으로 보인다.

1980년대 북에서 만든 신상옥 감독의 한 영화에 처음 키스신이 등장했다. 입술이 다가가는 순간 우산으로 가렸지만 북한 주민들은 지금도 그 장면을 잊지 못한다. ‘사육신’은 그보다 더 큰 충격을 줄 듯하다. 20억 원가량 투자해 이 같은 문화적 영향을 미친다면 ‘사육신’은 절대 실패한 것이 아니다. 통일은 이렇게 다가서는 것이 아닐까.

주성하 국제부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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