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조선인 BC급 전범, 해방되지 못한 영혼’

  • 입력 2007년 8월 11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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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인 BC급 전범, 해방되지 못한 영혼/우쓰미 아이코 지음·이호경 옮김/336쪽·1만5000원·동아시아

한국인 戰犯에겐 해방이 오지 않았다

오래돼도 너무 오래됐다. 이 책이 일본서 출간된 때가 1982년이다. 조선인 B·C급 전범들이 동진회(同進會)를 만들어 일본에 사죄와 배상을 요구한 지는 50년이 넘었다.

늦어도 너무 늦었다. 한국 정부는 지난해에야 이들 중 83명을 일제에 의한 강제동원 피해자로 인정했다. 이들의 억울한 삶이 한국에서 조명되기 시작한 것도 불과 2, 3년 전이다.

아직 조선인 B·C급 전범 문제를 모르는 이도 많다. 저자는 이들이 일본에선 전범, 한국에선 일제 앞잡이 취급을 받은 ‘이중 피해자’라고 말했지만 더 무서운 것은 무관심이다.

조선인 B·C급 전범은 누구인가. 일본이 점령했던 인도네시아 등 이른바 ‘대동아 공영권’에서 열린 전쟁범죄재판에서 형을 받은 사람들이다. 조선인은 대부분 포로감시원으로 일한 군속이었을 뿐이지만 148명이 전쟁범죄자로 전락했고 이 중 23명이 교수형이나 총살형을 당했다. A급 전범으로 교수형에 처해진 일본인은 7명에 불과하다. 오사카경제법과대 아시아태평양연구센터 객원교수인 저자(66)는 20대에 일제의 조선인 학살 사실을 접한 뒤 재일 조선인 문제를 파고들었다.

그는 일본 정부의 각종 기밀문서와 당시 전범재판기록, 전범의 수기 등 방대한 자료를 찾아냈다. 왜 이들이 부당하게 전범으로 몰렸는지 치밀하게 분석한 냉철한 머리와 이들의 비참한 삶을 안타깝게 지켜본 따뜻한 가슴이 어우러진, 담담하지만 눈물겨운 기록이다.

이들은 철로와 비행장 건설 작업에 동원된 포로를 감시했다. 이들이 포로를 때린 것은 맞다. 하지만 이들은 일본군으로부터 “조센징 주제에”라는 멸시를 받으며 포로가 작업 목표량을 해내지 못하면 책임 추궁을 당하는 처지였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특히 저자는 서구의 전범재판이 공정하고 정당한 절차를 따르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조선인 전범의 기소장에는 구체적인 범죄 사실이 없다. 그저 뭉뚱그려 포로를 때렸다는 증언만으로 생사가 결정됐고 전범이라는 평생의 치욕을 감당해야 했다.

일제가 포로 학대의 책임 추궁에 대한 방패막이로 이들을 이용했다는 증거도 속속 발견됐다. “포로수용소가 조선인과 대만인에 의해 조직됐고 그들의 낮은 교육수준이 포로 학대를 유발한 원인이라고 말할 것.” 이는 저자가 일본 방위청에서 찾아낸 문서다. 이 문서에는 일본군이 연합국의 심문에 어떻게 대답할지 요령도 적혀 있었다.

포로감시원 출신 오재호 씨가 1943년경 본 기밀서류에는 “포로를 학대하는 것은 조선인 부대이지 일본인이 아니라는 내용의 해외 방송을 일제가 했다”는 기록이 있었다.

1945년 전쟁은 끝났지만 이들에게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조국이 아니라 일본으로 송환돼 ‘일본인’ 전범으로 형이 만기될 때까지 구금됐다. 형무소에서 A급 전범들이 조기 석방되는 모습을 봐야 했다. 풀려난 뒤에는 ‘외국인’이라며 원호 대상에서 제외됐다. 비참한 삶을 견디다 못해 출소 후 자살한 이들도 있었고, 정신병원에서 여생을 보내기도 했다.

동진회가 1991년 일본 정부를 도쿄지방재판소에 제소할 때 함께한 일본 젊은이들이 이제 아이의 손을 잡고 동진회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우리는 강제동원 피해를 인정한 것만으로 이들에 대한 빚을 다 갚은 걸까. 이들은 아직 일본으로부터 어떤 사죄와 보상도 받지 못했다.

“우리에겐 존재를 잊지 않고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누구도 우리를 봐주지 않는 쓸쓸한 신세라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한 조선인 B·C급 전범자가 50여 년 전 일본 형무소에서 한 말을 여전히 되풀이하게 할 것인가. 이 책은 묻고 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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