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혜원의 펄프픽션]히가시노 게이고 ‘붉은 손가락’

  • 입력 2007년 8월 11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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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찌감치 밝혀지는 살인범

범행과정-심리 추적에 스릴

무더운 여름밤을 나기에는 추리소설이 좋다. 한껏 살인사건에 몰입하다 보면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에 빠진다. 롤러코스터와 추리소설 둘 다 끝이 있기에 마음 놓고 소리 지르며 즐기는 것이다. 그런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붉은 손가락’(현대문학)은 좀 다르다. 분명 롤러코스터를 탄 듯 한번 책을 잡으면 놓을 수가 없기는 한데, 책장을 덮고도 책 속의 일탈과 책 밖의 일상을 구별하지 못한 채 주변을 두리번거리게 된다. 나를 스치는 평범한 이들, 저들의 하루는 과연 안녕한 것일까.

‘붉은 손가락’의 주인공 아키오는 길거리에서 수도 없이 스치는 중산층 가장의 전형이다. 그는 사랑보다 정으로 맺어진 아내, 게임에만 미쳐 있는 중학생 아들, 치매기가 있는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세상에 이 정도 문제 없는 가정은 없다. 그런데 어느 날, 이 평범한 집 정원에서 목 졸린 여아의 시체가 발견된다. 범인은 부부의 중학생 아들. 아들을 살리고 자신도 살 길은 오직 하나, 사건을 은폐하는 것이다. 부부가 살인사건을 은폐하는 과정에서 중산층 가족의 뒤틀린 문제가 하나씩 드러난다.

히가시노의 소설에서 범인이 누구인가는 중요치 않다. 대개 범인은 50페이지 안에 밝혀진다. 중요한 묘미는 ‘어쩌다가 중학생이 어린 아이를 죽이고, 그 사건을 부모가 은폐하려 하는가’라는 문맥을 파고드는 데에 있다. 범인을 밝히고 끝나는 할리우드식 추리물과 달리, 일본식 추리물은 살인의 과정과 심리에 초점을 맞춰 탄탄하고 치밀하게 진행된다. 대립하면서도 공조하는 두 명의 맞수가 사건을 풀어나가다 마지막에 비수로 내리꽂는 듯한 반전으로 마무리하는 것도 히가시노식 추리소설의 묘미이다.

누구나 자신을 평범하다고 생각한다. 왕따 치매노인 유아 살해와 같은 끔찍한 단어는 전부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라며 외면한다. ‘붉은 손가락’의 주인공 아키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형사 가가의 지적대로 이 세상에 평범한 집이라고는 없다. 바깥에서 보면 평온한 가족으로 보여도 모두 이런저런 도화선을 안고 사는 법이다. 사건 해결의 열쇠는 명탐정이 아닌 개인이 갖고 있다. 만약 아키오와 아내가 서로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더라면, 아키오의 아들에게 단 한 명의 친구만 있었더라면, 그 평범한 단독주택에서는 아무 일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한혜원 계명조형예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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