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가 大事 앞에서 기자실 대못질하다니

  • 입력 2007년 8월 10일 23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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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홍보처가 외교통상부 기자실에 상주하는 기자들에게 사흘 말미를 주고 12일까지 퇴거하라고 통보했다. 외교부 기자실은 100명 내외의 내외신 기자가 3주 넘게 거의 철야로 아프가니스탄 인질 사태를 취재하고 있고, 여기에 남북 정상회담까지 겹쳤다. 그런데 국정홍보처는 국민의 촉각이 몰려 있는 외교부 기자실에 취재 지원을 해 주지는 못할망정 철거민 몰아내듯 기자실 폐쇄를 강행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보다 선진화된 미국 국무부의 출입기자들도 다른 부처와 별개로 독자적인 기자실을 사용한다. 국가 간 장벽이 낮아지고 세계가 한마을처럼 연결된 국제화 시대에 외교 뉴스에 대한 국민의 수요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그런 판에 기자실을 늘려주기는커녕 외교부 안에 있던 기자실을 없애는 것이 정부가 할 짓이고 취재지원 선진화인가. 국정홍보처 사람들은 국내외 상황 변화나 국정 우선순위에는 아예 관심이 없는 듯하다.

이런 식의 통제는 언론 자유를 존중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대한민국에 언필칭 언론 자유가 있다고 말하기도 부끄러울 정도다. 이 정권 사람들은 군사독재정권 이상의 횡포를 부리면서 마치 언론권력의 피해자인 것처럼 엄살을 부리고 우는 시늉을 한다. 가소로운 허위의식이다.

김창호 국정홍보처장은 중앙 언론사 기자를 지낸 언론학 교수 출신이다. 언론의 역할과 실정을 잘 아는 사람이 아무리 벼슬 맛이 좋더라도 할 일 안 할 일은 가려야 한다. 정권 말기에 권력의 하수인들이 자행하는 자유언론에 대한 칼질은 이 정권이 끝난 뒤에도 한국 언론사에 낱낱이 기록될 것이다.

외교부 기자단은 “현재의 취재 환경을 고려해 아프가니스탄 인질 석방과 남북 정상회담이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송고실 이전을 연기해 달라”고 하소연하고 있다. 세입자가 딱한 사정을 호소하면 집주인도 야박하게 길거리로 내쫓지는 않는 법이다. 그런데도 국정홍보처는 대통령 말 한마디에 화석처럼 굳어 버렸다. 우리는 국민의 알 권리를 봉쇄하고 기자들의 취재를 방해한 자유언론의 적(敵)들을 똑똑히 기억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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