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사 큰아들’ 인공호흡기 제거한 아버지 불구속

  • 입력 2007년 8월 10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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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사 상태에 빠진 20대 아들의 인공호흡기를 떼어 내 숨지게 한 아버지가 경찰에 불구속 입건됐다.

혐의는 ‘살인’이지만 구속이 되지 않은 것은 경찰이 딱한 사정을 참작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 아버지의 처벌 수위는 검찰과 법원의 판단에 넘겨지게 됐다. 그 결과에 따라 한국 사회에 안락사 허용 논란을 다시 점화시킬 가능성도 있다.

광주 북부경찰서는 중증 장애인 아들이 뇌사상태에 빠지자 인공호흡기를 떼 내 숨지게 한 혐의(살인)로 9일 윤모(51) 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윤 씨는 전날 오전 11시경 병원 중환자실에서 입원 치료 중인 아들(27)의 인공호흡기를 떼어 낸 뒤 전남 담양군 집으로 데려와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열 살 때부터 근육이 경직되는 유전성 불치병(진행성 근이영양증)을 앓아 온 1급 지체장애인인 윤 씨의 아들은 지난달 11일 넘어지며 머리를 크게 다친 뒤 의식불명 상태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 왔다.

윤 씨는 아들이 소생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은 뒤 의료진에게 몇 차례 ‘인공호흡기를 떼겠다’고 말했으나 의료진은 뇌사 판정을 위한 절차를 밟으라며 반대했다.

의료진의 만류를 뿌리치고 8일 아들의 인공호흡기를 떼어 낸 윤 씨는 아들에게 수동식 호흡기를 부착한 뒤 집으로 데려왔고 아들은 곧바로 숨을 거뒀다.

윤 씨는 아들이 숨진 뒤 화장을 하려 했으나 서류 미비로 거부되자 인근 경찰 지구대에 변사 신고를 했고 경찰 조사 과정에서 이 같은 사실이 드러났다.

윤 씨는 2004년 부인(50)과 이혼한 뒤 어머니(76)를 모시고 살면서 큰아들과 같은 병을 앓는 둘째 아들(23)의 병 수발을 해 왔다.

윤 씨는 경찰에서 “소생 가능성이 없어 고통받는 큰아들을 곱게 보내 준 뒤 같은 병을 앓고 있는 둘째 아들을 잘 보살피고 싶었다”고 말했다.

윤 씨를 조사한 경찰관은 “아들이 숨질 수 있다는 점을 알고도 호흡기를 떼어 냈기 때문에 현행법상 살인 혐의로 처벌할 수밖에 없다”며 “윤 씨가 아들이 뇌사상태에서 회복 불가능하다는 것을 고민해 왔고 오랜 기간 자식을 돌봐 온 점을 참작해 불구속 입건했다”고 말했다.

광주=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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