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제도 안 정한 정상회담 성과낼까… 외교전문가 분석

  • 입력 2007년 8월 10일 03시 06분


코멘트
“비핵화-경협 등 남북 이해관계 첨예

보름새 의제설정-조율 사실상 불가능”

남북 정상회담 개최가 채 20일도 남지 않았지만 정부가 아직 의제 선정을 위한 내부 논의도 제대로 못해 회담의 성과가 불투명하다고 외교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정상회담 남측 준비기획단장인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9일 오전 브리핑에서 “의제 문제는 오늘 오후 1차 준비기획단 회의에서 논의될 것”이라고 밝혔지만 실제 회의에선 의제를 제외한 준비기획단 구성 문제와 부처 간 협조체계 문제 등만 논의됐다. 남측은 이날 북측에 의제 문제 등을 논의하기 위한 첫 실무접촉을 13일 열자고 제의했다.

▽번갯불에 콩 볶나?=정상회담 준비 경험이 많은 외교관들에 따르면 정부는 미국 일본 중국 등 주요국 정상과의 회담을 추진할 때도 우선 회담 날짜부터 잡는 사례가 적지 않다. 상대국 정상의 빡빡한 일정에서 회담을 할 수 있는 날짜를 미리 확보하는 게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의제는 평소 다양한 외교 경로를 통해 논의를 거듭해 온 주요 외교 현안과 장기간 묵혀 뒀던 문제들로 자연스럽게 정리되기 때문에 의제 선정에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또 회담이 열리기 전 양국의 실무진 간에 쟁점에 대한 합의가 사실상 끝나고, 회담이 열려 정상이 논의하는 것은 의례적인 형식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남북 정상회담은 첨예하게 이해가 갈리는 영토 문제나 극도로 민감한 안보 이슈가 많이 걸려 있기 때문에 어떤 의제를 선정하느냐가 사실상 회담의 성패를 결정하는 요소라는 것.

따라서 남북 간에 의제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면 충분한 시간 여유를 두고 회담 일정을 잡든지, 회담을 급하게 열어야 한다면 일정 확정 이전에 큰 틀의 의제라도 미리 결정해야 한다는 게 외교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남북은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을 준비하면서 회담 개최 두 달 전에 일정을 공식 발표하고, 의제 등을 조율했다.

남북 회담에 정통한 정부의 한 소식통은 “대통령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과 통일부 장관이 공식 브리핑에서 ‘의제 협의가 안 됐다’고 발표하는 바람에 의제 설정의 축이 언론으로 넘어갔다”며 “경험 부족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북핵 문제 진전’ 등의 포괄적인 의제라도 발표할 수 있도록 북한을 설득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간에 쫓기면 실패=정부 관계자는 “회담이 시작되기 전 남북 간 실무접촉에서 의제에 대한 의견 접근을 못 볼 경우 회담에서 ‘퍼주기’식 대북 제안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회담 기간 3일 동안 성과를 올리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에 조급해져 책임지기 어려운 조건을 제시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다. 북한이 이를 노리고 실무접촉에서 고의로 합의를 회피할 가능성도 있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는 “이번 회담에서 남측이 북측에 ‘6개월 내에 핵 폐기를 실천에 옮기면 대규모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를 하겠다’며 거래를 시도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이런 경우 북측은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서해 북방한계선(NLL) 재설정이나 국가보안법 폐지 문제 등까지 연계하는 전술로 남측을 압박해 투자 액수를 최대한 올리려고 할 것이라는 게 남북 회담에 정통한 인사들의 관측이다.

한 대북 소식통은 “아무리 사소한 문제라도 지나치지 않고 ‘지렛대’로 쓰는 북한의 협상 방식을 고려했다면 의제 협의도 제대로 하지 않고 회담 일정을 잡은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