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신화]분쟁지역 ‘인간안보’의 중요성

  • 입력 2007년 8월 10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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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과 방송을 메우던 아프가니스탄 인질 사태는 전격적으로 발표된 남북 정상회담에 자리를 내준 것 같다. 회담 의제 및 전망에 대해 남북한뿐 아니라 주변 국가 간 손익계산이 한창인 걸 보면, 역시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는 국가 중심적 사고를 바탕으로 하는 안보 개념으로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나 보다.

그러나 오늘날 국제사회의 주요 이슈를 살펴보면 평화와 안전을 위해 군사적 위협으로부터 국가 안보를 보장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함을 알 수 있다. 냉전 종식 이후 국가와 국가 간에 국제전이 벌어질 가능성은 크게 감소한 반면, 인종적 종교적 갈등에서 빚어진 내전(內戰)은 급증했다.

내전으로 빚어진 대량학살, 강간, 난민사태와 같은 위기 상황은 지구촌의 가장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평시에도 자국 정부가 자행하는 인권 유린이나 정부의 부패와 무능으로 인한 자연 재해와 기아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단순히 국방이나 국가의 정치적 안보를 통해서는 주권국가 내 개인이나 그룹의 안보를 보장할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안보의 논점이 국가적 차원에서 개인적 수준으로 전환되거나 확대돼야 한다는 이른바 ‘인간 안보(human security)’의 중요성이 대두했다.

국제 구호요원 신변 위협 증대

‘공포로부터의 자유’와 ‘궁핍으로부터의 자유’라는 유엔의 슬로건을 토대로 발전한 인간 안보의 개념은 그 광범위한 정의 때문에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인도적 위기 사태가 정치 사회 경제 군사 국제적 요인과 복잡하게 얽혀 진행되는 ‘복합적 위기상황(complex emergencies)’을 띠면서 ‘공포와 궁핍’에는 밀접한 연계성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아프가니스탄은 복합적 위기 상황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 준다. 민족과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 다양한 집단 간에 벌어진 20년 동안의 내전은 200만 명의 사망자와 400여만 명의 난민을 낳았을 뿐 아니라 국토를 황폐화하고 경제를 몰락시켰다.

9·11테러 이후 미국의 반(反)테러전으로 탈레반 정권이 붕괴되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산하의 국제안보지원군과 미군이 주도하는 다국적군의 지원을 받는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을 통치하고 있다. 하지만 전쟁, 부패, 빈곤, 치안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가운데 탈레반이 세력을 확장하면서 불안정 상태가 심화되고 있다.

복합적 위기 상황에 처한 국가는 스스로 대처할 능력이 없는 ‘실패 국가’인데 이들 국가 내의 인간 안보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국제사회의 총체적이고 전면적인 개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다. 이에 따라 실패 국가에 대한 국가 차원의 원조와 외교 활동뿐 아니라 국제기구와 민간 차원의 단체를 통한 다양한 형태의 원조가 이뤄지게 됐다.

국제적 구호 활동이나 평화유지 활동이 증가하면서 부작용도 늘었는데 대표적인 예로 분쟁지역에서의 인도적 구호요원의 신변 안전 문제를 들 수 있다. 정부와 내전을 벌이는 반군은 원조 물자를 가로채거나 구호 행동을 방해하고, 언론과 국제사회의 관심을 끌기 위해 구호요원을 공격한다.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에서 볼 수 있듯이 미국의 반테러전이 많은 이슬람 국가의 비판을 받으면서 유엔이나 국제 구호기구의 ‘깃발’ 아래 일하는 것이 안전하기는커녕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다. 구호요원이 서구(특히 미국)의 대리인 혹은 ‘꼭두각시’로 간주되면서 폭력의 희생자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탈레반의 인질이 되어 생사의 갈림길에 있는 우리 젊은이들의 비극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反인권 행위 척결 힘 모아야

이번 인질 사태는 우리에게 지구촌의 모든 국가는 상호 연관성 혹은 상호 취약성 속에 놓여 있으며 외관상 안전해 보이는 국가도 복합적 위기 상황에 빠진 국가 때문에 어려운 처지에 빠질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안보 상황이며 기존의 국가 안보적 시각만으로는 미국, 아프간 정부, 탈레반 사이에서 해결점을 찾기도 힘들어 보인다는 데 문제가 있다.

다양한 외교적 채널과 여론 조성을 통해 인권 침해를 자행한 국가나 집단에 대한 국제사회의 강력하고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하는 동시에 탈레반의 비극을 만든 빈곤, 문명 간의 반목과 같은 근본 원인을 제거하는 국제사회의 노력에 적극 동참해야 할 시점이다.

이신화 고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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