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은 왜? 선물 보따리 챙기고 내부 불만 달래고

  • 입력 2007년 8월 9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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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게 남북 정상회담은 결코 손해 볼 것이 없는 장사다. 당초 약속했던 서울 답방도 아니고 남한 대통령이 평양으로 온다면 남측의 지원을 챙기고, 한반도 문제 해결의 주역으로서 자신의 정치적 입지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김 위원장은 북핵문제가 풀리지 않는 상황에서는 남북 정상회담을 열어도 ‘선물 보따리’가 빈약할 수 있다는 계산에 따라 그동안 ‘때가 아니다’라는 판단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7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10월 핵실험 이후 남측이 쌀과 비료 지원을 일시 중단한 마당에 남북 정상회담에 응해 봐야 얻는 것도 없이 체면만 구길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올해 들어 6자회담 2·13합의로 북핵 문제의 돌파구가 마련되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미국은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에 동결됐던 북한 자금 해제를 통해 대북정책의 변화를 보여 주었고,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해제와 적성국 교역금지 적용 배제에도 원칙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이런 여건을 적극 활용해 남측의 지원까지 최대한 끌어내겠다는 속셈인 듯하다. 남측이 북핵문제로 미국의 눈치를 보느라 대북 지원을 미룰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또 남측이 대통령 선거를 불과 4개월여 앞두고 있는 점도 김 위원장을 조급하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북한에 우호적인 노무현 정부가 물러나기 전에 정권 교체 이후에도 바꾸기 어려운 대북 지원정책 기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 어느 때보다 체제에 대한 불만이 높아진 북한 내부 사정도 중요한 요인이 됐을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은 올 2월부터 평양을 중심으로 지난 10여 년간 마비된 사회주의 체제를 회복시키기 위한 여러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다수 주민은 “국가가 배급을 주지 않아도 좋으니 제발 통제하지 말라”며 극도의 반감을 나타내고 있다. 게다가 국제사회의 지원이 1년 넘게 끊기다 보니 또다시 대량 아사(餓死)사태가 발생할 조짐까지 나타나고 있다.

김 위원장으로서는 내부 통제를 위해 분위기 반전의 계기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 이를 위해 남북 정상회담만큼 효과적인 카드는 없다.

핵실험이나 미사일 실험과는 달리 남북 정상회담은 북한 주민에게 ‘뭔가 지원이 들어와 곧 잘살 수 있다’는 희망을 줄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정상회담이 절실한 쪽은 남측보다는 오히려 김 위원장 자신일 수도 있다.

김 위원장이 60대 중반을 넘긴 데다 건강이상설까지 꾸준히 제기되는데도 불구하고 후계 구도조차 세우지 못하고 있는 사정도 그가 남북 정상회담을 결단하게 만든 또 다른 이유일 수 있다.

안정적인 후계 승계 과정을 밟기 위해서라도 남북관계를 공고히 다지고 더 많은 지원을 얻어내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남북 정상회담은 김 위원장에겐 얻을 것은 많고 잃을 것은 별로 없는 다목적 카드라고 할 수 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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