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위원장 서울 답방 약속 결국 ‘공수표’

  • 입력 2007년 8월 9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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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2000년 6월 13일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김대중 당시 대통령(오른쪽)과 영접을 나온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만나 악수하는 모습. 동아일보 자료 사진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2000년 6월 13일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김대중 당시 대통령(오른쪽)과 영접을 나온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만나 악수하는 모습. 동아일보 자료 사진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사항들은 얼마나 이행됐을까.

6·15 남북공동선언의 이행 정도에 대해 전문가들은 “그럭저럭 이뤄졌다” “내실이 없다”는 등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6·15공동선언은 모두 5개항으로 이뤄져 있다. 이 가운데 통일 원칙을 담은 1항은 추상적인 선언이라 이행 수준을 계량화하기 어렵다.

다만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1항에 대해 “‘통일 문제를 우리 민족끼리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했다’는 이 합의가 실제 북핵 문제 등을 푸는 데 별 역할은 못하면서 남남갈등과 한미 관계 이견을 불러오는 요소가 됐다”며 낮게 평가했다.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한다’는 등 통일 방법을 다룬 2항은 6·15공동선언 이후 거의 논의가 되지 않았다. 민감한 사안이라 남북 모두 이 문제를 공론화하길 꺼린 탓이다.

이산가족 방문과 장기수 문제를 풀어나가기로 한 3항과 경제·사회·문화 교류 활성화에 관한 내용인 4항은 어느 정도 이행됐다는 평가가 많다.

남북 정상회담 직후인 2000년 8월 남북 이산가족 대면상봉이 이뤄진 데 이어 올해까지 모두 15차례에 걸쳐 이산가족 상봉이 있었다.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사업이 이뤄지고 남북 간 연간 교역액이 10억 달러에 달하는 등 남북 경협 규모는 크게 늘어났다.

그러나 강성윤 동국대 교수는 “3, 4항 이행은 정치적인 영향으로 중단되는 일이 잦아 실망을 많이 줬고 이산가족 상봉 문제도 제도화되지 못했다”며 이를 ‘절반의 성공’으로 평가했다.

당국 간 교류를 담은 5항과 관련해 장관급 회담이 21차례 걸쳐 개최되고 군사당국자 회담과 각종 실무 회담이 지속적으로 열리는 등 외적으로는 성과가 있었다. 그러나 장관급 회담의 합의 결과가 ‘재탕’인 것들이 상당수이고 실질적인 성과는 크지 않았다는 비판도 있다.

남북은 2000년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에 대해서도 합의했으나 이는 현재까지 이뤄지지 않았다. 이번에도 남측은 김 위원장의 서울 방문을 요청했지만 결국 노무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는 것으로 합의됐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김대중 정부는 이 조항 이행을 1년 내에 가까운 시기로 봤던 것 같다. 노무현 정부는 ‘상대가 응한다면 언제 어디서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정상회담에 응하겠다’며 이 조항의 구속력을 풀었다”고 말했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6·15공동선언의 실천에 대해 “1, 2항에 대해서는 평가가 어렵고 3, 4, 5항은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그런대로 이행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남 교수는 “총론은 그럭저럭 진행해 왔지만 각론으로 보면 내실이 없다”며 “북한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한 건 뭐라고 봐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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