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남북 정상회담, 따져볼 일이 많다

  • 입력 2007년 8월 8일 22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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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남북 정상회담이 28일부터 사흘간 평양에서 열리게 됐다. 한반도와 주변 정세가 급변하고 있는 만큼 조금이라도 실질적인 진전이 있기를 기대한다. 북한의 핵 폐기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문제 등 현안이 산적해 있다. 상징적, 정략적 회담에 그쳐선 안 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핵 폐기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회담이어야 한다. 북핵 폐기 2단계 조치(핵 프로그램 신고와 핵시설 불능화)가 논의되고 있지만 속도가 너무 더디다. 과연 북이 9·19공동성명과 2·13합의대로 핵을 완전히 포기할지 누구도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여는 것은 자칫 우리가 북의 핵 보유를 용인해 주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평양에 가는 것도 우리로서는 큰 양보다. “김 위원장은 서울 답방 약속을 지키지도 않았다”며 굴욕감을 토로하는 국민이 많다. 자존심 굽혀 가며 평양까지 가 핵 문제에서 별다른 성과 없이 돌아온다면 국가의 체면은 말이 아니게 된다. 회담 의제(議題)도 사전에 합의되지 않았다고 하니 뭐가 그리 급했는지 모를 일이다.

정부 일각에선 “평화체제 수립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하지만 섣부른 기대다. 1953년 정전(停戰)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려면 정전협정 당사자인 미국과 중국의 동의도 있어야 한다. 남북이 합의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더욱이 북은 평화체제 문제에 관한 한 미국은 ‘시니어 파트너’로, 우리는 논의의 직접 당사자가 못 되는 ‘주니어 파트너’로 치부했다.

평양회담이 6자회담을 촉진할 것이라는 관측도 근거가 희박하다. 그렇게 되면 좋겠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오히려 북이 6자회담에서 관철하지 못한 요구들을 평양회담에서 꺼낼 가능성이 높다. 경수로 공사 재개(再開)도 예상되는 요구 사항 중 하나다. ‘경수로’ 세 글자만 나와도 노 대통령은 “6자회담에서 논의할 문제”라며 확실히 선을 그어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실질 임기가 4개월밖에 안 남은 대통령이 북에 너무 많은 것을 약속할까 봐 큰 걱정이다. 대통령 스스로도 “내가 도장 찍고 합의하면 후임이 거부 못한다” “북이 달라는 대로 다 주어도 남는 장사”라고 했기에 더 그렇다. 북과의 어떤 합의도 퇴임을 코앞에 둔 대통령이 제대로 이행하기는 어렵다. 결국 차기 정권에 넘겨야 한다. 무리한 합의는 다음 정권에 경제적 부담은 물론 첨예한 남남 갈등까지 떠안길 수 있기 때문에 삼가야 한다.

정상회담의 정략적 이용 가능성은 더 심각한 문제다. 이 정권 사람들은 회담 동기(動機)의 순수성을 강조하지만 다수 국민의 눈에는 대선 판을 흔들려는 저의가 있는 것으로 비친다. 지지 세력을 결집시키고, 반대 세력을 반(反)민족, 반평화로 몰아가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북이 정상회담에 합의해 준 것도 반보수, 반한나라당 세력의 대선 승리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겠는가.

남북문제로 국내 정치에 영향을 미치겠다는 발상 자체가 낡았다. 노 대통령과 범여권으로선 이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국민은 2000년 6·15공동선언을 통해 실망스러운 체험을 했다. 노 대통령이 동기의 순수성을 보여 주려면 2002년 평양을 방문해 일본인 납북자들을 데리고 나온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처럼 우리 납북자들과 국군포로들을 데리고 올 각오를 다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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