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기업 30곳중 12곳 남녀 비율 정해놓고 선발

  • 입력 2007년 8월 8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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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대기업 3곳 중 1곳은 대졸 신입사원을 뽑을 때 여성 합격자가 지나치게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성적과 관계없이 남성 지원자를 일정 비율 이상 선발하는 ‘남성 쿼터제’를 시행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같은 사실은 본보가 1일부터 7일까지 전자, 정보기술(IT), 화학, 식품, 통신, 신용카드, 은행, 증권 등 15개 업종별로 대표업체 2개씩 모두 30개 업체를 선정해 남성 쿼터제 시행 여부를 조사한 결과 밝혀졌다.

조사대상 30개 업체 중 10개 업체는 내부적으로 이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고 답했다. 또 이들 10개 업체 외에 금융회사 2곳은 여성 지원자를 사실상 배제하는 직군별 모집제를 통해 남성 합격자 수를 인위적으로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직접 또는 간접적인 방법으로 남성 쿼터제를 활용하는 기업은 조사대상 업체의 40%인 12곳인 것으로 파악됐다.

해당 기업 인사 담당자들은 남성 쿼터제를 도입한 이유에 대해 “여성 신입사원이 증가하자 일선 부서가 ‘업무 효율이 떨어진다’며 남성 사원을 보내 달라고 요구하는 사례가 늘었기 때문”이라며 “여성 신입사원이 일정 한도를 넘지 않도록 채용 기준을 내부적으로 바꿨다”고 설명했다. 성적만으로 신입사원을 뽑으면 여성 합격자가 대부분 반수를 넘어 일선 부서의 인력 수요를 맞출 수 없다는 것.

대기업에 취업하려는 여성 지원자가 2000년 이후 크게 늘어난 데다 이들의 시험 성적도 남성보다 뛰어나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라고 기업 관계자들은 전했다.

식품, 화학, IT 등 3개 업종의 경우 대표기업 2곳 모두 남성 쿼터제를 시행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보험과 통신 업종도 대표기업 2곳 중 1곳에서 남성 쿼터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계는 성별 제한이 없는 곳으로 알려져 있지만 조사 결과 일부 은행은 남성 쿼터제를 도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수년 전 민영화된 한 기업은 현재 남성 쿼터가 있는 것은 인정했지만 공기업 시절에도 이 제도를 운영했는지에 대해서는 확인을 거부했다.

반면 여성 인력 수요가 많은 유통과 항공, 전통적으로 여성 지원자가 적은 건설, 중공업, 정유, 증권, 전자 등 8개 업종은 남성 쿼터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남성 쿼터제가 위법인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렸다.

박상현 변호사는 “경영 판단에 따라 필요한 인재를 채용하는 것은 기업의 자율”이라며 “남녀고용평등법으로 규제할 근거는 없다”고 말했다. 반면 노동부 김태홍 고용평등심의관은 “남녀 비율을 미리 정해서 채용하는 것은 차별에 해당한다”며 “특정 직무에 남성을 위주로 채용하면서 고용자가 그 이유를 합리적으로 제시하지 못하면 간접차별에도 해당된다”고 밝혔다.

이번 조사는 기업들이 “민감한 사안이라 밝히기 힘들다”며 공식 설문조사에 난색을 보임에 따라 기업 이름을 밝히지 않기로 약속하고 인사 담당자들에 대한 대면 및 전화설문 방식으로 진행했다.

송진흡 기자 jinhup@donga.com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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