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여버린 외교해법 ‘지르가’서 풀릴까

  • 입력 2007년 8월 8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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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이 6일 정상회담에서 ‘탈레반과의 타협은 없다’는 원칙을 재확인함에 따라 이 회담이 탈레반 무장세력에 납치된 한국인 인질 조기 석방의 계기가 되리라는 기대는 무산됐다.

이에 따라 아프간 수도 카불에서 9일부터 사흘간 대규모로 열리는 부족 원로회의 ‘지르가’가 사태 해결에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평화 지르가(Peace Jirga)’라고 명명된 이번 행사엔 아프간과 파키스탄의 유력 부족장과 종교지도자, 정치인, 작가 등 두 나라에서 각각 350명씩, 모두 700명이 참가한다.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은 6일 정상회담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번에 열릴) 지르가에서 (탈레반) 문제에 대한 해답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지르가란 아프간 인구의 42%를 차지하는 최대 부족인 파슈툰 족의 원로회의에서 출발해 아프간 전역과 파키스탄 일부 지역에서 열리는 일종의 의사결정회의다. 주로 이익 당사자 간에 분쟁이 생겼을 때 중재 기능을 수행해 왔다.

탈레반이 정권을 잡기 전인 1990년 5월 개정된 아프간 헌법에서는 지르가가 ‘최고 주권기관’으로 규정돼 헌법 개정권과 대통령 선출권 등을 가지기도 했다. 지금은 법제 기구는 아니지만 여전히 아프간 국민에게서 상징적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이번 지르가는 지난해 9월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과 페르베즈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 부시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에서 아프간-파키스탄 평화분위기 조성을 위해 지르가를 열기로 합의한 데 따라 열린다. 파키스탄이 아프간에서 열리는 지르가에 참가하는 것은 파키스탄에도 파슈툰 족이 많이 거주하기 때문.

이 행사에 초청받지 못한 탈레반 측은 5일 성명에서 “이번 지르가는 미국이 주도한 것으로서 아프간 지배를 정당화하는 수단이 될 것”이라며 “아프간과 파키스탄 국민은 이에 불참할 것을 당부한다”고 밝혔다.

파키스탄에서 탈레반의 영향력이 큰 와지리스탄 지역의 부족장 60여 명과 파키스탄 상원의원 4명도 평화 지르가 불참을 선언했다고 6일 파키스탄 영자지 뉴스인터내셔널이 보도했다.

하지만 아프간과 파키스탄 양국의 대규모 원로단이 내린 결정을 탈레반 측도 무시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평화 지르가에서 피랍 한국인 문제에 어떤 결정이 나올지 주목되는 이유다.

그러나 지르가에서도 사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할 경우 탈레반이 인질을 추가로 해치는 등 사태가 더욱 장기화될 개연성도 있다.

::지르가(jirga)

아프가니스탄 최대 부족인 파슈툰 족의 말로 ‘회의’를 뜻한다. 중재 기능을 수행하는 부족 원로회의로서 타지크 족을 비롯한 아프간 내 다른 종족들에게도 전파됐다. 칸(khan) 또는 말리크(malik)라 불리는 중재자가 나서 이해 대립 당사자들의 의견을 청취한 뒤 원로회의를 거쳐 중재안을 내놓는다. 규모별로 지역(마라카·maraka), 부족(콰미 지르가·qawmi jirga), 전국(로야 지르가·loya jirga) 단위의 지르가가 있다.

전창 기자 j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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