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64년 통킹만 결의

  • 입력 2007년 8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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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에 대한 어떠한 무력공격도 격퇴하고, 앞으로의 침략을 막기 위해서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한을 대통령에게 부여한다.”

미국 하원은 1964년 8월 7일 사실상 북베트남에 대한 선전포고를 의미하는 ‘통킹 만 결의’에 대해 414 대 0으로 만장일치의 지지를 보냈다. 상원도 이 결의안을 88 대 2로 통과시켰다.

이 결의안은 베트남 통킹 만에서 초계 중이던 매독스호 등 미 구축함 2척이 베트남 어뢰정에 의해 8월 2일과 4일 두 차례 공격을 받았다는 ‘통킹 만 사건’을 빌미로 통과됐다. 린든 존슨 대통령은 즉각 북베트남 해군 기지를 폭격하라는 명령을 내렸으며 이듬해 2월 베트남에 미 해병대를 상륙시키면서 미국과 베트남의 전면전이 시작됐다.

그러나 통킹 만 사건은 조작됐으며 통킹 만 결의안도 이 사건이 일어나기 수개월 전에 만들어졌다는 의혹이 뒤늦게 제기됐다. 뉴욕타임스는 1971년 미 국방부의 비밀 보고서인 ‘펜타곤 페이퍼’를 입수해 베트남전쟁의 막전막후를 폭로했다. 이 보고서에선 1964년 2월부터 미 정부가 북베트남을 정치 경제적으로 무너뜨리려고 시도했던 비밀작전이 드러나 있다. 보고서는 미 정부가 통킹 만 사건을 과장해 베트남 전쟁의 개입 명분으로 이용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2005년 공개된 로버트 한요크 미국국가안전국(NSA) 역사연구관의 비밀보고서에서도 통킹 만 사건 때 NSA 감청요원들의 정보 왜곡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북베트남 당국의 무선 통신 감청 내용을 분석한 이 보고서는 8월 4일 북베트남의 2차 공격이 없었음에도 NSA 요원들이 구축함이 공격받은 것처럼 보고했다고 밝혔다. 정책 결정자들은 허위 보고에 근거해 폭격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통킹 만 사건이 처음부터 조작된 것인지, 아니면 베트남전 개입 명분을 찾으려는 미국 정부의 덫에 북베트남이 우발적으로 걸려든 것인지는 아직 명쾌하지 않다. 하지만 통킹 만 결의로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이 본격화됐고, 5만8000여 명의 미군이 사망했으며 200만 명의 베트남인이 피해를 봤다. 통킹 만 사건 발생 사흘 만에 전격 통과된 통킹 만 결의는 잘못된 정보에 의한 잘못된 결정의 폐해를 보여 준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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