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과의 사진이 훈장보다 위력적” 러 특권층 개념 바뀐다

  • 입력 2007년 8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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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정치인들이 누렸던 특권은 이제 장식물로 변했네. 그런데 새로 생긴 특권은 소수에게 몰리고 있지.”

12년간 러시아 국가두마(하원)에서 자리를 지켜온 보리스 키비레프 의원은 요즘 동료들을 만날 때마다 이런 푸념을 늘어놓곤 한다.

두마 평의원에게 제공되는 고급 휴양소, 크렘린 병원, 교외 별장 이용권은 휴지가 됐다. 반면 공항이나 도로에서는 연방보안국(FSB) 간부급 대접도 못 받는다는 게 이들의 불만이다.

러시아 주간지 노바야가제타는 6일 러시아 국가자본주의의 진전에 따라 정치인들이 누려온 특권에도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정치인 특권의 변천사=소련 시대 특권층의 상징은 좋은 휴양소, 고급 승용차, 국가 의료기관 이용권이었다. 이런 특권은 자본주의 러시아에도 이어져 지금도 장관급 이상 고위 관료, 각급 법원장과 국가두마 평의원들이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평론가 예브게니 민첸코 씨는 “이런 특권은 소련 시절 일반 시민들이 감히 접근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돈만 주면 모두 해결되는 것들”이라고 말했다.

1990년대 보리스 옐친 대통령의 집권 당시만 해도 두마 의원 신분이 특권을 대변했다. 의원 신분증만 갖고 있으면 공항과 도로에서 ‘무사 통과’ 예우를 받았다.

신분증에 특권이 따라붙자 이 증명서를 사고파는 암시장도 생겼다. 의원 보좌관 신분증 장사에 연루됐던 두마 의원 빅토르 체렙코프 씨는 “딱지(보좌관 신분증) 한 장에 300달러를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1990년대 300달러는 모스크바 시내에서 방 두 칸 달린 아파트 월세에 해당했다.

민첸코 씨는 “이제는 그런 딱지 자체를 찾아보기 힘들뿐더러 교통경찰에게 보여줘 봤자 아무 반응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권에서 밀려난 두마 평의원=2000년대 러시아에 자본주의가 뿌리내리면서 두마 평의원들은 특권층 중심부에서 계속 밀려났다. 키비레프 의원은 “요즘엔 장관들이 이용하는 병원과 두마 의원들이 찾아가는 병원이 완전히 구분될 정도로 차별이 심해졌다”고 설명했다.

두마 평의원들이 누리던 특권은 실속이 없어진 반면 대통령 행정실 인사들, FSB 간부, 장관들의 특권은 날로 확대되고 있다.

특히 장관들이 실속 있는 국영기업이나 민간기업 임원을 겸임하는 것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시대의 전형적인 특권이 됐다. 현재 러시아연방 15개 부처 장관 중 7명이 국영기업이나 민간기업 임원을 겸임하고 있다. 크렘린이 에너지 생산회사 등 주요 기업의 인사권을 직접 챙긴 뒤부터 나타난 관행이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수천 명의 관료가 자동차에 붙이고 다니던 경광등도 976개로 줄였다. 이 중 FSB 몫으로 230개가 돌아간 반면 두마에는 단 12개가 남았다.

한편으로 최고위 인사와의 친분 관계가 가져오는 이익이 옛날의 특권을 훨씬 뛰어넘는다. 변호사 알렉산드르 보브로빈스키 씨는 “크렘린에서 푸틴 대통령이나 FSB국장을 만나 사진을 찍든지 차량 통행증을 받아내면 단번에 특권층으로 인정받는다”고 말했다.

노바야가제타 얀나 세로바 기자는 “이제는 대통령과 나란히 TV에 출연하는 사람이 훈장을 받은 사람보다 많은 특권을 누리는 것으로 인식된다”고 설명했다.

기업 임원을 겸임하고 있는 러시아 고위층
이름정부 직책기업 내 직책
드미트리 메드베제프제1부총리국영기업 ‘가스프롬’ 이사장
세르게이 이바노프제1부총리국영기업 ‘통합항공사’ 회장
세르게이 나리쉬킨부총리국영TV ‘제1채널’ 임원
세르게이 소뱌닌대통령행정실장주식회사 ‘TVEL’ 사장
이고리 세친대통령행정부실장석유회사 ‘로스네프티’ 회장
빅토르 이바노프대통령보좌관항공사 ‘아에로플로트’ 임원
알렉세이 쿠드린재경부 장관금융기관 ‘저축보험 대행사’ 임원
이고리 레비틴교통부 장관국제공항 ‘셰레메티예보’ 임원
레오니트 레이만정보통신부 장관통신지주회사 ‘스뱌지인베스트’ 임원
아나톨리 세르듀코프국방부 장관국영기업 ‘KHIMPROM’ 임원

모스크바=정위용 특파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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