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데이비드 브룩스]나이 들었다고 삶까지 다르랴

  • 입력 2007년 8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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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미국 뉴햄프셔 주 킨에서 열린 한 행사에 다녀오는 길에 고서점에 들렀다. 책을 뒤지다 익명의 저자가 1911년에 쓴 책을 하나 발견했다.

책의 제목은 ‘나이 든 여인의 자서전’이었다. 저자는 삶의 각 단계를 회상하며 책을 시작했다. 어렴풋하게 떠오르는 소녀 시절과 한없이 귀중했던 청춘기, 자녀가 성인이 되어 어머니의 동행이 돼 주는 시기 등.

그런데 어느 순간 뭔가 변했다고 저자는 적었다.

“언제 변화가 왔는지는 모르겠다. 내 아이들도 모를 것이다. 나도 그 애들 세대였던 적이 있지만 지금은 아니다. 어느 순간부터 애들이 나를 염려하기 시작했고 집안의 걱정거리는 의논하지 않게 됐다. 내가 ‘망가져서’가 아니고, 애들이 내가 걱정을 해선 안 된다고 여기게 된 것이다. 아이들은 집안일을 걱정하다가도 내 앞에선 입을 다물었다.”

이어 저자는 자녀들이 어떻게 그녀를 보호하게 됐는지를 써 내려갔다. 볼일이 있을 때는 걸어갈 수 있는데도 마차를 대령해 주었다. 조금 수고스럽다 싶은 일은 못 하게 막았다.

“딸애가 내 걸음걸이를 지켜보는 것을 보면 내가 얼마나 나이를 먹었는지 알 수 있다. 아들의 근심 어린 눈을 보면 내가 얼마나 허약해졌는지 알 수 있다.”

그녀는 ‘새로운 차원’에서 살게 됐다고 적었다. 아직 여러 가지를 느끼고 이해하지만 아무도 자기에게 조언을 구하려 하지 않게 되면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르게 됐다. “아이들이 더 나은 삶을 살도록 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걸 알게 됐다. 애들 앞에 놓인 돌 하나도 치울 수 없게 된 것이다.”

가스등 시대에 쓴 글이지만 저자는 최근의 사회과학적 조사에 나오는 것과 같은 사실을 이해하고 있었다. 이 책은 용도가 다한 사람의 탄식이며, 세상을 더 잘 알게 됐는데도 관습 때문에 세상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게 된 사람의 탄식이다.

그것은 작지만 주목할 만한 책이었다. 그러나 얼마 뒤 나름대로 이 책에 대해 조사해 보고 놀랐다. 저자는 당시 37세였던 메리 히튼 보스였다. 자기 어머니의 목소리를 빌려 책을 쓴 것이다. 보스는 자유예술가 겸 급진적 저널리스트였고 유진 오닐이나 존 리드 등과 친교를 가졌던 인물이다.

보스가 책에 쓴 것은 당대의 사실을 담고 있다. 역사가 데이비드 해킷 피셔의 책 ‘미국에서 늙어가기’에 따르면 미국 건국 초기에는 나이 든 사람들이 높은 대우를 받았다. 그러나 19세기 전반 이후 차차 젊음이 대우를 받고 나이 든 사람들의 위상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19세기 후반에 이미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젊은 사람들이 나이 든 사람에게서 배울 것이 별로 없다고 썼다. ‘구식(fogy)’이란 말은 한때 부상당한 퇴역군인을 뜻하는 말이었으나 점차 오늘날과 같은 의미로 쓰이게 됐다. 식사 테이블 자리 배치도 나이순에서 사회적 성취순으로 바뀌었고, 과학적 지식이 경험보다 우위에 놓이게 됐다.

여성들은 예전에 막내가 결혼할 때까지 살기 힘들었으나 이제는 나이 들어서 특별한 역할 없이 살게 됐다. ‘나이 든 여인의 자서전’의 주인공은 이 같은 경향들에 따른 희생양이었다.

보스의 입을 빌려 나온 말이 오늘날의 노년층에 얼마나 해당되는지는 잘 모른다. 오늘날 노년층은 더 부유해졌고 더 활동적이며 옛날의 자기 연배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은 활동에 참여한다. 그들은 아직도 젊은 시절과 다른 차원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이제는 그들 스스로가 ‘차원’을 선택하는가?

데이비드 브룩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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