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불쌍한 백만장자들’

  • 입력 2007년 8월 6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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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캘리포니아 주 실리콘밸리에 살고 있는 게리 크레멘(43) 씨는 어떤 기준으로 봐도 부자다. 데이트 알선 서비스인 매치닷컴(Match.com)의 창업자인 그의 순자산은 1000만 달러(약 90억 원). 그런데도 그는 부자가 되기 위해 요즘도 매주 60∼80시간씩 일한다.

뉴욕타임스는 5일 ‘부자라고 느끼지 않는 실리콘밸리 백만장자’ 기사를 통해 “실리콘밸리에는 객관적으로는 백만장자지만, 여전히 다른 평범한 사람들처럼 똑같이 열심히 일하는 백만장자가 많다”고 분석했다.

이들은 쉬지 않고 일한다고 해서 ‘노동자계급 백만장자(working-class millionaires)’로도 불린다.

정보기술(IT) 업체에서 마케팅담당 임원으로 일하는 헬 스테거(51) 씨도 전형적인 노동자계급 백만장자. 금융자산이 200만 달러에 이르고, 태평양이 바라다보이는 130만 달러짜리 집도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매일 오전 7시면 회사에 출근한다. 매주 평균 근무시간은 70시간에 이른다.

그렇다면 이들이 부자라고 생각하지 않는 이유는? 주변에 부자가 너무 많아 부의 기준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1000만 달러 자산가인 크레멘 씨는 “실리콘밸리에선 1000만 달러 재산은 아무것도 아니다”며 “정말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실리콘밸리의 비싼 물가도 이들 백만장자를 불안하게 한다. 실리콘밸리 평균 집값은 올해 1분기(1∼3월) 기준으로 78만8000달러로 미국 평균 집값(21만23000달러)의 4배에 이른다. 부자 동네에서는 주거비, 쇼핑, 교육비 등으로 그만큼 쓰는 돈도 많기 때문에 웬만큼 부자가 아니고는 안심을 못한다는 것.

실제로 토니 바갈로(44) 씨는 지난 20년 동안 약 360만 달러를 벌었다. 그런데 세금을 내고 난 뒤 남은 돈은 220만 달러. 여기에 최근 75만 달러 집을 산 뒤 리모델하는 비용으로 35만 달러를 쓰고 보니 남은 돈은 120만 달러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그는 여전히 매주 70시간 이상을 일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에선 200만∼300만 달러 자산 소유자들도 평범한 미국인들과 똑같이 의료보험과 자녀 대학교육비 등을 걱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부에 대한 원초적 욕구도 실리콘밸리 백만장자들이 손에서 일을 놓을 수 없는 이유다.

주변의 ‘더 큰 부자’들에게서 자극받아 목표를 ‘500만 달러, 1000만 달러, 2000만 달러…’식으로 계속 높이다 보니 은퇴 후 편안한 삶보다는 앞만 보고 일하는 삶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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