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 명확히 구분”→“정보조회는 몰아서”

  • 입력 2007년 8월 4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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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정원 자료열람 해명’ 남는 의문점

한나라 “정치간섭 숨기려 해외담당 명의 빌렸나”

열람때 별도승인 불필요… 직무內 자료만 봤을까

시민단체 “정보공유시스템 사생활 침해 문제있다”

국가정보원은 3일 “1차장(해외담당) 명의의 행정자치부 자료 열람 건수가 많은 것은 내부적인 기준일 뿐 실제 업무와는 관계없다”면서 “자료 관리 부서에서 국익정보 방범 보안 안보수사 등 업무와 관련한 각 부서의 신청을 종합해 1차장 명의로 열람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정원이 지난해 8월 한 달 동안에만 2924건의 행자부 개인정보를 열람했고 이 중 89.4%가 해외업무담당인 당시 김만복(현 국정원장) 1차장 산하에서 이루어졌다’는 본보 보도에 대해 이렇게 해명한 것이다.

하지만 국정원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국내담당 부서에서 실시한 개인정보 열람을 왜 해외담당 차장 명의로 했는지 등 여러 가지 의문이 풀리지 않고 있다.

특히 ‘부패척결 태스크포스(TF)’의 이명박 전 서울시장 처남 김재정 씨의 부동산 자료 열람에 대해 국정원이 했던 해명과 관련해 새로운 의혹이 일고 있다.

한나라당은 이날 “의문점이 해소되지 않았다”며 국회 정보위 소집, 국정조사, 특별검사 도입 등 진실 규명을 위한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왜 1차장 명의로?=국정원은 이날 보도 자료를 통해 “행자부 자료 열람을 위해서는 부서를 명기하게 돼 있는데 정보기관 특성상 구체적인 조직을 공개할 수 없어 업무와 관련한 각 부서의 신청을 종합해 1차장 명의로 열람했기 때문에 1차장 명의의 조회 건수가 많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 “1차장의 열람 건수는 2005년 1월(2500여 건)과 8월(2300여 건) 등 월평균 2590여 건으로 지난해 8월 열람 건수(2614건)와 비슷하다”며 “이는 당시 1차장만 자료 열람을 많이 한 것은 아니라는 뜻”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국정원이 왜 1차장 명의로 모든 업무의 개인 자료를 열람하고 있는지 의혹이 가시지 않고 있다.

한나라당에서 국정원이 2차장 명의로 할 경우 국내 정치에 간섭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일부러 해외담당인 1차장 명의로 바꿔 놓은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정원은 ‘부패척결 TF’가 국정원 1차장 산하에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서는 “‘부패척결 TF’는 국내담당인 2차장 산하이며 1차장과 2차장의 업무는 명확하게 구분된다”고 강조했다. 차장별로 업무가 분담되어 있는데 굳이 개인 자료를 열람하는 명의는 왜 차장별로 분담하지 않고 1차장에게 몰아줬는지도 의문이다.

또 국정원은 지난달 5급 직원 고모 씨가 김재정 씨의 부동산 자료를 열람해 논란이 됐을 때 “직속 과장의 전결을 받아서 행자부에 신청했다”고 자세히 해명했지만 “해당 과장이 1차장의 이름으로 행자부에 자료를 요청했다”는 사실은 공개하지 않았다.

특히 국정원 직원 중 행자부 자료를 열람할 수 있는 직원이 극히 제한되는 상황에서 굳이 열람 명의까지 바꿀 필요가 있었느냐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국정원 관계자는 “국정원 자료지원팀이 편의상 1차장 명의로 나머지 차장 산하의 업무도 담당해서 그렇게 된 것”이라며 “보안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도움이 되고 창구를 단일화하는 의미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수사기관, 1년에 몇 건이나 했나?=한나라당 이상배 의원이 3일 확인한 바에 따르면 국가기관의 행정정보공동이용 건수는 2002년 257만 건에서 지난해 2368만4000건으로 9배 이상 늘었다.

국민이 여권 등을 발급받을 때 굳이 서류를 구비하지 않고 구청에 오더라도 구청 직원이 전산망으로 필요한 자료를 볼 수 있도록 국민의 행정적 편의를 제공하는 ‘대민서비스’를 확대했다는 것이 행자부의 설명이다.

그러나 국가기관의 개인정보 열람이 쉬워짐에 따라 국정원 등의 개인 사생활 감시도 그만큼 용이해졌기 때문에 국정원이 개인 자료를 열람할 때 국정원법 직무 범위 내의 대상에 한해 합법적인 절차를 거쳤는지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국정원은 이날 해명자료에서 “국정원은 매달 1차장 명의로 평균 2590건을 열람했다”고 밝혔다. 1차장 산하 기관만 매년 행자부에서 3만 건이 넘는 개인정보를 열람한 셈이다.

국정원 관계자도 “전체 국가 기관이 매년 수천만 건을 열람하고 있는 것에 비춰볼 때 국정원이 열람한 매년 3만여 건은 많은 것이 아니다”며 “오히려 일 좀 더 하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다.

▽수사기관 승인권자, 자료 접근 용이=국회에는 지난해 11월 정부가 제출한 ‘행정정보공동이용법안’이 계류 중이다.

정부는 이 법의 주요 내용에서 ‘현재 공동이용 심사·승인 절차 등이 미비하여 정보를 보유한 기관의 재량이 개입될 여지가 크다. 공동이용 행정정보의 범위를 법에서 명확히 규정하고 추가·변경 등의 절차를 엄격히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현재 규정이 미흡함을 시인하고 있다.

지난해 8월 27일까지 운용된 G4C공유시스템은 물론 현재 운용 중인 ‘행정정보공동이용시스템’에서도 국정원에서 자료를 볼 수 있도록 승인을 받은 승인권자는 조회가 필요할 경우 별도의 승인을 받지 않아도 열람이 가능하다.

행자부 관계자는 “국가기관이 일일이 건별로 어떻게 모두 신청을 받고 검사를 하느냐”며 “‘대민서비스’용은 건별로 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지만 ‘행정업무용’은 승인권자가 볼 수 있도록 승인된 자료에 대해서는 건별로 승인을 거치지 않아도 열람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들은 정보공유시스템이 공동 이용에 대한 정확한 법적 근거나 권한이 없고, 모든 개인정보의 열람으로 인한 사생활 침해의 문제가 있다며 해결책을 계속 요구하고 있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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