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테러범과 협상불가 원칙 자국민 피랍때도 예외없다

  • 입력 2007년 8월 4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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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인 3명 콜롬비아 게릴라에 4년째 억류

미국인 스탠셀 부부는 벌써 4년이 넘게 콜롬비아 게릴라 혁명군(FARC)에 납치된 아들 키스의 석방을 속절없이 기다리고 있다. 남편 진과 아내 린 씨는 “테러리스트와 협상하지 않는다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정책이 아들을 희생양으로 만들었다”고 하소연한다.

이번 아프가니스탄 한국인 피랍 사태를 놓고 국내에서는 ‘미국이 자국민 납치에도 이렇게 두 손 놓고 있을까’라는 문제 제기가 나온다. 미국의 역할을 기대하는 목소리도 무성하다. 하지만 ‘스탠셀 사례’는 미 행정부에 큰 기대를 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시사한다.

▽자국민도 예외 없다=키스 스탠셀은 2003년 2월 미 국방부의 계약업체 소속으로 콜롬비아 마약지대를 순찰하는 임무를 수행하다 FARC에 붙잡혔다. 미국인 동료 2명과 함께였다.

FARC는 이들 인질과의 맞교환 조건으로 콜롬비아와 미국에 수감돼 있는 FARC 고위 인사들의 석방을 요구했지만 미국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협상 자체를 거부했을 뿐 아니라 FARC 지도자인 리카르도 팔메라를 에콰도르에서 체포해 납치사건 지시 혐의로 기소했다.

이후 4년 동안 가족들의 석방 노력은 계속됐다. 정부 관계자들을 만나 도움을 호소했고 알바로 우리베 콜롬비아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보내는 한편 인터넷 서명운동과 가두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허사였다.

그렇게 잊혀지는 듯하던 이 사건은 지난달 초 미국인 인질들을 찍은 동영상이 아랍 위성채널 알자지라 방송을 통해 공개되면서 다시 공론화됐다.

스탠셀은 이 동영상에서 “군사적 구출작전이 벌어지면 우리는 죽는다. 살고 싶다”고 호소했다.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는 “이 사건이 미국 행정부가 테러리스트와 협상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을 새롭게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런 탓인지 최근 미 법무부 내에선 최소 30년의 실형을 선고받게 될 팔메라의 형량 감경을 고려 중이라는 언급이 나왔다. 그러나 행정부 관계자는 “FARC가 인질들을 풀어 주면 그때 가서 감형을 고려할 수 있다는 의미”라며 ‘인질 선(先) 석방’을 주장했다.

▽협상의 딜레마=콜롬비아 정부도 납치범과 협상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한다. 한 해에만 납치사건이 3000건 이상 발생하는 세계 최악의 납치 국가라는 오명을 벗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2002년 대선후보였던 여성 정치인 잉그리드 베탄코트도 그해 대선을 앞두고 납치된 뒤 아직 풀려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대화 등을 통한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끊이지 않는다. 특히 FARC가 지난달 정체불명의 외부세력으로부터 공격받자 “군사적 구출작전이 아니냐”며 인질로 잡고 있던 지방의회 의원 11명을 모두 사살해 버린 사건이 기름을 부었다.

콜롬비아에서는 이를 규탄하는 대규모 시위와 함께 인질 석방을 위한 납치범과의 협상에 대한 찬반 논란이 거세게 불붙었다.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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