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96년 안기부 제1별관 해체

  • 입력 2007년 8월 4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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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팽한 긴장의 순간도 잠시. 정문 초소에서 폭파 단추를 눌렀다. “쾅” 하는 굉음에 이어 연쇄 폭발. 높이 18.5m(5층), 연면적 2581㎡(약 781평) 규모의 직사각형 회색 건물이 도미노식으로 내려앉았다. 건물 외벽에 둘러친 차단막을 뚫고 뿌연 회오리 먼지가 치솟았다. 10여 분 뒤. 먼지가 가라앉은 잔해 위로 남산타워가 모습을 드러냈다. 곳곳에서 탄성이 터졌다.

1996년 8월 4일. 남산의 옛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청사 제1별관이 서울시의 ‘남산 제 모습 찾기 사업’의 하나로 폭파 해체됐다.

민주화 탄압과 인권 유린으로 악명 높았던 안기부 청사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5초. 30여 년 공포정치의 무소불위 권력은 무상했다. 이보다 앞선 1995년 9월. 안기부가 서울 서초구 내곡동 신청사로 이전해 23년간의 ‘남산시대’가 막을 내렸다.

안기부는 5·16군사정변 직후 김종필 씨 주도로 창설된 중앙정보부의 후신.

러시아혁명 뒤 레닌이 만든 체카(KGB의 전신)나 히틀러가 조직한 게슈타포가 그랬듯이 ‘반정부세력’이라 불리는 사람들을 잡아들였다. 정치사찰, 정치공작, 언론탄압이 이뤄졌던 곳이 안기부 청사였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과 장세동 안기부장이 한때 이곳의 주인이었다.

군사독재의 절정기에는 음습한 정치공작과 고문이 벌어졌다. 유신헌법 반대 시위 대학생들의 체포에 항의하던 최종길 서울대 법대 교수가 1973년 의문사한 곳도 여기다.

남산시대가 끝나자 ‘남산’이란 단어 자체만으로도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시절은 기억 저편으로 묻혔다. 안기부는 어두운 이미지를 씻고 국민에게 다가가겠다고 약속했다. 제1별관 폭파는 새 출발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1999년 그 이름도 국가정보원으로 바꿨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 국정원은 어떤가. 민주화 이후에도 정치사찰, X파일 유출, 도청 등 독재정권의 구태를 다 정리하지 못했다. 최근에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처남의 부동산 자료 열람 등을 놓고 공작정치 논란을 빚고 있다. 지난해 8월 한 달 동안에만 정부 전산망으로 수천 건의 개인정보를 열람한 사실도 드러났다.

남산 안기부 청사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 본관은 그대로 남아 세계의 젊은 대학생들이 모여드는 서울유스호스텔로 바뀌었다. 3일 총지배인에게 물으니, 21개국 젊은이 300여 명이 이곳에 머물며 미래 지향적 국제교류에 여념이 없다고 한다.

조직과 사람은 아직 옛 버릇을 못 버렸는지 몰라도 건물만은 환골탈태한 셈이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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