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독립에 헌신 헐버트 박사 58주기… 외손녀 방한

  • 입력 2007년 8월 3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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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보다 한국인을 더 사랑한’ 호머 헐버트 박사의 외손녀 주디 애덤스 씨(앞)와 그녀의 아들 존 애덤스 씨(57). 주디 씨는 “많은 한국인이 외할아버지를 기억하고 있어 감개무량하다”고 말했다. 변영욱 기자
‘한국인보다 한국인을 더 사랑한’ 호머 헐버트 박사의 외손녀 주디 애덤스 씨(앞)와 그녀의 아들 존 애덤스 씨(57). 주디 씨는 “많은 한국인이 외할아버지를 기억하고 있어 감개무량하다”고 말했다. 변영욱 기자
“외할아버지는 항상 한국 땅에 묻히고 싶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고령의 할아버지가 먼 한국까지 갈 기회는 오지 않을 거라며 웃곤 했죠. 1949년 한국에서 할아버지를 초청했을 때, 그토록 기뻐하는 할아버지의 얼굴은 그전에 본 적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지난달 31일 한국을 처음 찾은 주디 애덤스(85) 씨는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의 외할아버지는 바로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미국인 호머 헐버트(1863∼1949) 박사다.

1886년 조선에 온 헐버트 박사는 고종 황제에게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특사를 파견할 것을 건의했고 3·1운동을 지지하는 글을 발표하는 등 조선 독립을 위해 헌신했다. 1949년 국빈 자격으로 다시 한국 땅을 밟은 지 1주일여 뒤인 8월 5일 한국에서 눈을 감았다. 서울 마포구 합정동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묻힘으로써 한국 땅에 묻히고 싶다는 소원을 ‘이뤘다’.

그 후 58년 만에 사단법인 ‘헐버트 박사 기념사업회’ 초청으로 외손녀 애덤스 씨가 한국 땅을 밟았다. 1일 서울 중구 밀레니엄서울힐튼호텔에서 만난 애덤스 씨는 헐버트 박사가 한국에 올 때와 비슷한 나이의 고령에 휠체어를 탈 정도로 몸이 불편해 보였지만 밝은 웃음을 잃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어린 제게 ‘정치적 활동’에 대해서는 거의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국인을 무척 사랑했다는 사실만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는 “할아버지는 조선을 침략한 일본을 마치 자신이 한국인인 것처럼 미워했다”고 말했다. 헐버트 박사는 조선의 독립에 미온적이었던 당시 미국의 극동정책을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할아버지는 열정과 지성을 겸비한 분이었습니다. 한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 그 열정은 헌신으로 승화됐습니다. 할아버지는 정직한 사람을 좋아했는데 한국인이 대부분 정직했던 것도 한국인을 사랑한 이유라고 들었습니다.”

헐버트 박사는 일제가 약탈한 경천사 10층석탑(국보 86호)의 반환운동에 불을 댕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1907년 약탈 소식을 듣자마자 일본의 영자신문에 이를 폭로했다. 이 사실을 처음 알았다는 애덤스 씨는 “일제 침략의 부당성을 알린 외국인으로는 할아버지가 챔피언임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며 웃었다.

헐버트 박사는 구전으로 전해지던 아리랑을 서양식 오선보로 처음 채보해 외국에 알린 주인공이기도 하다. 애덤스 씨는 어머니(헐버트 박사의 딸)가 아리랑을 좋아해 즐겨 불렀다고 전했다. 그는 3일 오전 11시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서 열리는 헐버트 박사 58주기 추모식에 참석한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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