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재영]외신 ‘피랍 오보’ 홍수 속에서

  • 입력 2007년 8월 3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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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피랍 한국인 전원 석방’이라는 희소식을 애타게 기다리던 피랍자 가족들은 1일 현지에서 날아드는 외신에 피 말리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 탈레반 무장세력이 정한 협상 시한(오후 4시 반)을 넘기면서 ‘인질 4명 추가살해 위협’과 ‘군사작전 개시’라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피랍자들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알자지라 방송 등은 ‘탈레반 인질 4명 추가 살해 위협’ 소식을 전했다. 또 이날 오후 8시 40분경 아프간이슬라믹프레스(AIP)와 로이터통신 등은 지역 아프간 관리의 말을 빌려 “인질 구출을 위한 군사작전이 시작됐다”고 보도했다. 긴장은 극에 달했다. 피랍자들의 생명을 보장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외신은 몇 시간 뒤 모두 오보로 밝혀졌다. 군사작전 개시설을 흘렸던 아프간 관리가 당초 발언을 뒤집었고, 탈레반도 추가 살해 위협설을 부인했다.

로이터와 AIP는 오보를 인정하고 정식으로 기사를 취소했지만 걱정으로 새까맣게 타들어갔을 가족들의 가슴은 그 무엇으로도 치유하기 힘들 것이다. 이런 예민한 사안에서 ‘아니면 말고’ 식의 보도가 말이나 되는가.

피랍 사태 발생 후 외신에선 오보가 적지 않았다. ‘피랍자 8명이 석방됐다’는 오보가 대표적이다.

시시각각 협상 상황이 바뀌고 한치 앞도 예측하기 힘든 이번 사태를 취재하면서 기자는 때로 자괴감이 들었다. 국내 언론으로선 현장에서 사실을 확인할 수 없고 한국 정부의 공식 설명도 부족하다 보니 외신의 오보를 가리기 힘든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확실한 것만 써야 한다면 단 한 줄도 쓸 수 없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온 국민의 관심이 쏠린 중대 사안에 언론이 손놓고 있을 수만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이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는 ‘신중함’이다. 자칫 특종 한 건을 놓치더라도 ‘최대한 확인된 것만 쓰겠다’는 신중함만이 오보를 피할 수 있다. 본보 편집국에서도 매일 밤 제목 한 자, 기사 한 줄을 놓고 검토에 검토가 이어진다.

섣부른 보도가 피랍자 가족들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줄 수도, 협상 과정에 심각한 장애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이번 오보 소동을 펜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모든 언론이 다시 한번 되새기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 같다.

김재영 국제부 redf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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