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랍자들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알자지라 방송 등은 ‘탈레반 인질 4명 추가 살해 위협’ 소식을 전했다. 또 이날 오후 8시 40분경 아프간이슬라믹프레스(AIP)와 로이터통신 등은 지역 아프간 관리의 말을 빌려 “인질 구출을 위한 군사작전이 시작됐다”고 보도했다. 긴장은 극에 달했다. 피랍자들의 생명을 보장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외신은 몇 시간 뒤 모두 오보로 밝혀졌다. 군사작전 개시설을 흘렸던 아프간 관리가 당초 발언을 뒤집었고, 탈레반도 추가 살해 위협설을 부인했다.
로이터와 AIP는 오보를 인정하고 정식으로 기사를 취소했지만 걱정으로 새까맣게 타들어갔을 가족들의 가슴은 그 무엇으로도 치유하기 힘들 것이다. 이런 예민한 사안에서 ‘아니면 말고’ 식의 보도가 말이나 되는가.
피랍 사태 발생 후 외신에선 오보가 적지 않았다. ‘피랍자 8명이 석방됐다’는 오보가 대표적이다.
시시각각 협상 상황이 바뀌고 한치 앞도 예측하기 힘든 이번 사태를 취재하면서 기자는 때로 자괴감이 들었다. 국내 언론으로선 현장에서 사실을 확인할 수 없고 한국 정부의 공식 설명도 부족하다 보니 외신의 오보를 가리기 힘든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확실한 것만 써야 한다면 단 한 줄도 쓸 수 없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온 국민의 관심이 쏠린 중대 사안에 언론이 손놓고 있을 수만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이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는 ‘신중함’이다. 자칫 특종 한 건을 놓치더라도 ‘최대한 확인된 것만 쓰겠다’는 신중함만이 오보를 피할 수 있다. 본보 편집국에서도 매일 밤 제목 한 자, 기사 한 줄을 놓고 검토에 검토가 이어진다.
섣부른 보도가 피랍자 가족들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줄 수도, 협상 과정에 심각한 장애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이번 오보 소동을 펜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모든 언론이 다시 한번 되새기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 같다.
김재영 국제부 redf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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